[박민근의 심리치료] 소아우울증 유감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12.20 15:43
  • 10여 년 전 나는 동료교수를 합당한 이유 없이 쫓아내려던 교수들과 불화가 생기며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사퇴압력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펼친 탓이었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기를 바랐던 나는 고통스럽게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아름다운 비평을 쓰는 것이 평생의 계획이던 나의 인생 좌표는 흐트러졌고, 충북으로 내려가 오랜 칩거에 들어갔다.

    서울을 떠나 처음 3년간 깊이 앓았던 것이 외상 후 우울증이었다. 운명의 가혹함에 대한 원망이 병을 점점 키웠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날이 잦았다.
    우울증에 걸리면 가장 먼저 느끼는 기분이 무기력감이다. 이 무기력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감정이 마음을 쉼 없이 뒤흔드는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

    당시 내가 유일하게 기운을 내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고, 독서치료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마음을 정화해주고 상승시키는 많은 책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또 내게 푸른빛 날개를 달아주었다. 길고 치열한 자기치유를 거치며 나는 이제 누구보다 낙관적인 심성을 갖게 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역경은 나를 성장시킨다고 말한다. 고난이 내 숨은 재능을 일깨웠고, 그래서 나는 이제 그때의 고난을 한편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 나는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소아우울증 어린이들을 책을 통해 치유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나는 상담실에서 우울증을 앓는 아이를 만나면, 그들의 우울한 눈빛을 마주할 때면 우울증을 앓았던 그때의 나를 항상 떠올리곤 한다. 나 역시 그 깊은 강을 건너온지라 아이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고 그들의 마음을 누르는 무기력의 원인을 찾아주려 진지하게 몰입하게 된다. 

    10살 은혁이는 심한 소아우울증을 앓고 있다. 은혁이의 엄마 역시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엄마의 그 무기력한 표정과 말투는 은혁이에게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최근 은혁이 부모 사이의 불화가 심해지면서 은혁이의 마음은 더 무기력해지고 슬퍼졌다. 평소 얌전하기 이를 데 없는 은혁이는 때때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시달려야 했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처음 만난 날 나는 은혁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혁아, 선생님은 누구보다 네 마음을 잘 안단다. 사실 선생님도 은혁이처럼 몹시 슬퍼서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거든. 그런데 선생님은 그 기분에서 벗어나는 신비한 비법도 알고 있단다.”

    그리고 우울감을 어루만져주는 몇 권의 동화책을 은혁이 앞에 펼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무기력해보이던 은혁이는 앞에 놓인 동화책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은혁이가 처음 잡은 책은 아름다운 동화책을 잘 쓰는 올리버 제퍼스의 ‘마음이 아플까봐’였다. 어린 시절 큰 상실을 경험한 소녀가 마음을 닫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숨겨두었던 아픈 마음을 풀어낸다는 내용의 서정적인 동화책이다. 동화책을 읽는 은혁이의 표정은 심각해졌다가, 또 몰입했다가, 또 부드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은혁이와 나의 우울증 극복 여행은 시작되었다. 소아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몇 가지 일이 있다.

    우선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대상과 일을 만나야만 한다. 책이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림이나 음악도 좋고, 운동이나 나름의 취미생활도 좋다. 조건이라 할 것이 있다면 아이가 그런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묻고 대답해주는 성숙한 조력자가 한 명쯤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이는 자신이 느낀 존재감이 사실이고, 또는 어떤 것인지를 그 성숙한 조력자와의 깊이 있는 대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우울한 아동들이 가지는 비관적인 생각을 교정하는 대화를 꾸준히 펼쳐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화의 상대는 부모일 수도 있고, 또는 성숙한 조력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의 조력자에게는 반드시 긍정적 대화기법에 대한 학습과 통찰이 필요하다.  
    마틴 셀리그만은 우울감을 겪는 아이들을 우울하지 않은 아동, 혹은 낙관적인 아이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 어린이의 마음 깊이 내재된 부정적인 생각의 패턴을 바꿔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적 생각을 바꾸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신의 부정적인 대화습관을 반성하고 갱신해야만 한다.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사항은 아니므로 낙관성 대화 전문가와 상의하면 보다 효과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 역시 부모들이 행하는, 아이의 우울증을 유발하는 부정대화법을 교정해주는 일이다.

    셀리그만은 이것을 소위 말하는 낙관성 훈련의 주요한 항목으로 지목한다. 우울감에 시달리는 아이나 사람들은 부정적 사고에 시달리고 긍정적 생활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의 부정적 사고와 생활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좋은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 파트너들이 긍정적 대화의 기본 원리들을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상담실에서 다시 만난 은혁이는 자주 웃으며 즐거운 자기감정도 표현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래 우울증을 앓았다는 은혁이의 엄마 역시 가끔씩 생기 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울증은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정신의 감기이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감기가 걸렸을 때 면역력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고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힘써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우울증은 주변의 조력자가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줘야만 한다.

    최근 소아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우리 아이들의 우울증을 막고 치료하기 위한 범사회적인 노력을 기대해본다.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 서울ND의원 문학치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