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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문제의 예방을 위해 어린이에게 독서만한 것은 없다. 심리적 문제가 생기기 전에 덕성을 길러주는 책과 심리적 역경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심리동화를 자주 접하면 아이의 심리 면역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런데 독서에 관한 한 아이의 개성에 맞는 ‘책읽기 습관의 척추(脊椎)’를 형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개성에 어울리는 독서 프로그램은 책읽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평생 즐겁게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반면 아이의 기질을 무시한 독서의 요구는 채식동물에게 고기를 권하는 것만큼 우매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다수를 겨냥한 일반적인 권장도서를 읽히기보다는 아이의 특성에 맞는 책을 선정하고 개성적인 독후 활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 즉 부모나 독서 멘토는 아이의 기질과 성향, 강점 지능, 성격 강점에 따라 특화된 독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아비만이었던 현서는 우리 병원에 와서 7kg 정도 감량하며 날씬한 아가씨가 되었다. 다중지능 검사를 마치고 현서의 독서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서 엄마는 아이의 스케줄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현서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숙제를 끝내면 대략 10시인데, 그때 잠을 자야지 독서를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하소연이다.
안타까운 우리 현실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습보다는 독서가 더 이롭고 큰 지적 성장을 가져온다는 설명을 하며 현서에게 맞을 만한 책을 추천했다. 언어지능이 뛰어난 현서는 말의 가락이나 상상적인 장면을 좋아해, 나는 아름다운 동시집 몇 권을 추천했다.
교육에 관한 한 첨단을 걷는 핀란드는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언젠가 TV다큐멘터리에서 접한 현서 또래의 핀란드 소녀는 오후 4시쯤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거들다가 저녁 7시경부터 자기 전까지 책을 붙들고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은 부모와 함께 하는 독후 활동이다. 아빠는 아이가 읽는 책을 함께 읽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엄마는 책을 읽고 난 소감이나 평가를 글로 쓰는 일을 돕는다. 그 솜씨가 전문가 뺨치게 능숙했다.
아이의 잠재성과 특성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다중지능 검사이다. 다중지능 이론에서는 아이의 지능은 여러 영역으로 분화되어 있고, 타고난 강점 지능 또한 저마다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독서 능력이 탁월한 아이, 언어지능이 뛰어난 아이들은 남다른 독서 성과를 내고 독서수월성 수준도 높다. 가령 앞서 현서의 경우에도 또래 수준을 넘어 한두 학년 위의 책을 즐겨 읽곤 한다.
하지만 다중지능 이론에서 독서가 언어지능이 뛰어난 몇몇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모든 자기계발 활동의 기반이 독서에 있기에 오히려 다중지능 교육 전반에 독서활동을 포진한다.
물론 다중지능 이론에서는 책을 통한 지식습득보다는 아이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늘리는 일에 더 비중을 둔다. 그래서 박물관 활동, 야외체험, 도제식 학습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독서가 체험으로 이어지는 교육 과정을 장려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장기 독서 로드맵을 짜려면 무엇보다 우선 아이의 강점 지능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할 만한 독서 영역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창의성, 용기, 낙관성 같은 아이의 성격 강점과 연관된 독서주제를 선택하면 아이의 입맛에 잘 맞는 대략적인 독서 프로그램이 완성된다.
가령 논리수학 지능이 뛰어난 아이에게는 수학이나 과학적 사고를 요하는 책을 권하고 또, 그에 기초한 독후활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에 창의성이 뛰어난 아이에게는 상상력이 풍부한 책으로, 분석력이 뛰어난 아이에게는 좀더 상세한 이론 설명이 가미된 책을 권하는 식인 것이다.
1년가량 독서 멘토링을 한 명수는 논리수학 지능이 상위 0.3% 안에 드는 명석한 아이였다. 아직 5학년이고 선행학습을 따로 시킨 적도 없지만 명수는 중학교 수학을 즐겨 풀었다. 나는 명수가 다양한 과학 관련 서적들을 접할 수 있게 도왔다. 명수가 책을 통해 처음 빅뱅이론에 관해 알았을 때가 기억난다.
흥분된 어조로 빅뱅을 설명하는 명수의 눈빛이 마치 보물섬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반짝거렸다. 책은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잠재성을 발견하는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아이의 성과물을 관리하는 일 역시 무척 중요하다. 이는 비단 재능을 신장하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아이의 심리적 파워를 높이는 점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독서 멘토링에서는 책읽기보다 배 이상의 시간과 관심을, 독서 성과물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에 쏟아야 한다.
내가 명수에게 사용했던 방법은 책으로 접한 내용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하는 노트를 만드는 것과 책 내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과학박물관 관람이었다. 과학에 대한 흥미가 그리 높지 않던 명수도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큰 관심이 생겼고, 자신의 진로나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꿈까지 과학을 통해 그려낼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의 성향에 맞는 독서 프로그램을 실천하면 평생을 이어갈 긍정적인 독서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다. 스스로 즐겁게 지식을 탐구하는 아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 눈먼 열성을 가진 부모들이 더 많다. 부모들이 흔히 관심과 중점을 두기 쉬운 수학 점수나 학교 등수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실질적인 힘이 떨어진다. 오히려 어른들만을 위한 껍데기일 뿐, 아이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어제 만난 현준이 역시 비록 수학 점수가 나쁘지 않았지만 수학 점수는 엄마를 위한 힘든 선물이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현준이의 강점 지능은 논리수학 지능이 아니라, 신체지능이다. 현준이는 어릴 적부터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일찌감치 엄마의 설득에 무릎을 꿇었다. 게다가 전문가 도움 없이 친구끼리만 하는 축구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컴퓨터게임에 빠져 통제가 잘 안 되는 상태였다. 더욱이 스스로 얼마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나를 알아보는, 자기주도 학습능력 검사를 해보니 바닥 수준에 다다라 있었다. 현준이에게 올림픽 역사에 관한 책과 나 역시 감동적으로 읽었던 펠레의 소년시절 전기를 권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정말 똑똑한 부모는 아이의 장점과 가능성을 잘 알고 진심으로 그것을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 아이 맞춤 독서 10계명
1. 아이의 독서 능력과 수준을 알기 위해 독서 능력을 평가해본다.
2. 다중지능 검사를 통해 아이의 다중지능 프로파일을 알아본다.
3. 아이의 성격 지향성을 알아보는 인성 검사를 받아본다.
4. 아이의 강점 성격을 알아보는 아동 성격 강점을 알아본다.
5. 검사 결과에 맞게 아이의 독서 목록과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짠다.
6. 아이의 독서 선호도나 기호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해 양과 질을 관리한다.
7. 아이의 특성에 맞는 독후 활동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8. 체험 학습이나 박물관 관람을 통해 독서 내용을 심화하고 경험으로 승화한다.
9. 독서 성과물(Output)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성과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정리한다.
10. 전문가와 지속적으로 상의하고, 진행 상황과 성과를 수시로 점검한다.
헬로닥터브레인 연구소 소장/ 서울ND의원 우리아이 몸·맘·뇌 성장센터 센터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왜 아이마다 좋아하는 책이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