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영성 기르기, 어린이 심리치료의 새로운 길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08.14 15:03
  • “혹시 아이가 교회나 절에 다니나요?”

    뜬금없는 질문 같지만, 아이의 심리 문제로 우리 병원을 찾는 부모에게 내가 자주 묻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는 심리치료를 위해 특정 종교기관에 아이를 보내라는 권유는 아니다. 심리치료의 본령은 아닌, 종교라는 우회적인 치유법을 부모에게 설명하는 데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아이와 영성(spirituality)을 서로 이어주려는 것은 이 둘의 깊은 상관성 때문이다. 어쩌면 부정적 정신성인 각종 심리적 문제는 영성과 반대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 영성의 계발은 아이의 심리를 건강하게 다스리고 육성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완성’에서 영성이 인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또 반대로 긍정적인 심성이 이르게 되는 인간의 영성에 대해 잘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긍정적인 감정이자 행위인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이 심지어 유전적 바탕이 있으며, 진화를 통해 습득한 보편적인 자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영성은 부정적 감정과는 달리 타인과 나를 이어주는 감정이며, 인간을 신성에 대한 경험과 결부시키는 긍정적 감정의 혼합체라고 정의한다. 서구적 뉘앙스의 영성이라는 말이 싫다면 인(仁)이나 덕성(德性)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미 심리학계에서도 이런 긍정적 감성의 육성과 정신건강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해오고 있다. 도덕성이 높은 아이가 더 학습의욕이 왕성하고, 또 커서 행복한 삶을 살기 쉬우며, 바른 품성과 정서지능이 높은 아동의 수행능력과 성취도가 다방면에 걸쳐 그렇지 못한 아동에 비해 높다는 점은 대표적인 영성의 실효성에 관한 연구결과이다.

    특히 긍정심리학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인류가 계발해온 24가지 성격 강점을 어떻게 함양하고 발현하느냐가 아이의 정신건강과 자아성장에 이르는 결정적인 비결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얼마 전 다양한 불안증상과 함께 소아비만을 치료한 남자 어린이는 영성이 깊었다. 성격 강점 테스트와 면담을 통해 살펴보니,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비해 훨씬 더 많은 덕성들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다. 종교 지도자의 자녀로 태어난 데다, 영성에 대한 지혜와 경험을 다양하게 쌓아온 점도 이롭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 아이는 부모들로부터 받아온 종교적 가르침에 적잖은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왜 나만 항상 타인을 위해 져주고 희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한 불만마저 내비쳤다.

    하지만 독서치료와 통합인지치료를 통해 아이의 흐트러져 있던 생각들이 차차 정리되자 다른 내담 어린이에 비해 훨씬 더 큰 회복탄력성은 보였다. 보통 아이들의 배 이상의 치료 경과를 보였다. 그 바탕에는 자의반타의반 길러온 아이의 영성이 있었다.

    이렇게 영성을 훈련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신 앞에 닥친 고난을 더 쉽고 효과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다. 대부분의 심리치료 대가들 역시 영성을 함양하는 일이 문제 심리를 콕 집어 치료하는 지엽적인 작업보다 훨씬 더 크고 장기적인 치료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의견을 모은다.

    그것은 몇 가지 부정적 심리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긍정적 정신성을 강화하는 것이 궁극적인 치료책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도 지적했듯 이런 훈련이 특정 종교에 의탁해야 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아이와 함께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든지, 어려운 이를 위해 성금을 기탁하는 등의 생활 속의 작은 자비 실천으로도 충분히 함양될 수 있다. 안 쓰는 물건을 모아 바자회에 보내거나 집 앞 거리를 부모와 함께 쓰는 일만으로 영성은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

    나 역시 불자는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불교공부를 해왔고 또 지금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통을 겪던 나를 위로하기 위한 소박한 자구책이던 것이, 나중에는 영성을 이해하는 깊은 공부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회고컨대 나를 성장시킨 가장 중요한 바탕에는 전심전력을 다했던 영성에 대한 탐구가 있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내 경험 역시 결코 개인적이거나 주관적인 일이 아니며, 마음의 병을 영성을 통해 극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백하고 증언하는 보편적인 진실에 가깝다.

    한편 영성은 긍정적인 성격, 감정, 능력의 인과물이자 통합체라고 할 수 있다. 영성의 수준은 인성의 중요한 판단 척도가 된다. 결국 아이에게 영성을 가르치고, 접하게 하고, 아이의 ‘영성지수’를 높이는 일은 인간의 본성과 덕성대로 아이를 성장시키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장 차원 높고, 지속가능성이 높은 심리치료는 바로 내 안의 영성 기르기이다. 어린 시절 바른 영성의 길로 아이들을 이끌면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며 겪을 숱한 심리적 상처를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아이를 위대한 인간적 성장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아이를 사회의 부속물이 아닌 영혼을 가진 진정한 인간 존재로 키우는 일에 있어 영성은 피할 수 없는 통과지점이다. 또한 멀지만 가장 단단한, 심리치유의 새로운 길이기도 하다.

    아이의 영성 기르는 법

    1. 다양한 종교를 체험 시켜라. 특정 종교에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사찰에도 다녀오고, 교회의 예배나 성당의 미사에 참여해본다. 참선도 해보고, 성지순례도 다녀보라. 그리고 선량한 목적의 종교행사에 자주 참여시킨다.  

    2. 아이의 성격 강점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체험활동을 실천해본다. 가령 용기가 많은 아이라면 자신의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마련한다.

    3. 선행과 봉사활동 주기적으로 실천한다. 가시화된 실천뿐만 아니라 실천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일 역시 중요하다.

    4. 풍부한 감성과 덕성을 길러주는 책 읽기를 꾸준히 실천한다.

    5. 아이의 사회지능(SQ)을 높여준다. 

    6. 생활 속에서 이타적 습관을 길러준다. 단, 강압이 아닌 자발성이 매우 중요하다.

    7. 아이와 도덕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8. 자녀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비록 아이와 수학문제를 푸는 일보다 더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문제에 대해 대화하는 일은 아이의 영성지수를 높이는 면에서 가장 유익한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박민근 헬로닥터브레인 연구소 소장/ ND케어클리닉 독서치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