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살 주희는 얼마 전 심한 불안장애 때문에 내게 상담을 받았다. 나는 두 가지 핵심적인 해결책을 부모에게 제시했는데, 첫째는 주희의 증상에 맞는 치유서를 매일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주말마다 가까운 숲을 찾아 산림테라피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숲에서 치유서를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부모들은 나의 처방을 성실히 따랐고,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주희에게는 큰 호전이 있었다. 부모들은 이제 아이는 물론, 자신들의 정신적 안정을 찾을 방책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10년 전 나는 교수들의 분쟁에 휘말리며 공부를 계속하는 일이 어려워졌고 서울을 떠나 충북 음성에서 지내게 되었다. 서른 살에 맞은, 뜻하지 않은 역경은 절망의 끝자락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슬픔의 심연에서 헤매던 날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 나는 나를 치유하고자 부단히 애썼다.
그러면서 처음 안 것이 독서치료였고, 또 숲 치유였다. 당시는 독서치료가 낯설고 또 미지에 가까운 학문이었다.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된 전문서적 한 권 찾기 힘들었다.
일겸 공부겸 나는 수천 권의 치유서를 읽고 정리하는 일에 공을 들였다. 거기에는 불교나 도교 같은 종교적 내용을 담은 것에서부터, 동서고금의 철학서적들, 울림을 가진 심리학 명저들, 그리고 최근의 긍정심리학 분야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이 포함되었다.
물론 아이들이 읽어 아름다운 정서를 기를 수 있을 책들도 엄선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불전(佛典)들, 스피노자, 하이데거의 운명에 관한 저술이나 퇴계의 심성에 대한 성찰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동시에 스캇 펙이나 리처드 칼슨, 웨인 다이어 같은 대중적 심리치료사의, 편한 치유서들 역시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웨인 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는 지금도 내가 성인 심리치료의 기본서로 삼는 책이다. 남의 눈치와 자잘한 걱정거리에 시달리던 내담자들은 책을 읽고 그때의 나처럼 평온한 마음을 얻는다.
독서치료나 글쓰기치료는 주체적인 자기치유의 특성이 강해서 다른 치유법에 비해 높은 치료 효율을 보인다. 사실 심리치유의 진정한 효과는 치료사나 타인의 역할이나 도움이 아니라 치료 당사자의 주체적 의지에 달려 있다.
책은 어느 면에서건 스스로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변화시키는 데 가장 유효한 매체이다. 나를 살린 또 하나의 은인은 숲이었다. 음성에 살던 시절은 숲의 치유 효과에 대해 알게 된 시기이자 깊이 빠져든 때였다. 나는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숲 치유의 과학적 효과까지 섭렵하고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커다란 치유의 혜택을 맛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피톤치드와 초록빛 파장의 긍정적 효과, 무정형의 자연물들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상승효과, 음이온, 흙속 미생물이 가져다주는 건강유익 등을 하나둘씩 연구서에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연구 중 접한, 리처드 루브의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라는 책은 숲 치유의 당위성은 물론이고, 아이들에게서 숲을 앗아가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깨닫게 하는 방향키가 되었다.
며칠 전 오랜 만에 서울을 벗어나 충북의 한 자연휴양림에서 보낸 시간은 또 다시 내게 깊은 치유와 평온을 전했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은 숲 안으로 천천히 걸어갈수록 번민과 혼돈스러운 마음이 한 꺼풀 벗겨지는 치유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만약 마음에 상처가 있다면, 나는 당신이 숲에서 한 권의 치유서를 들고 서있기를 권한다. 심리상담자에게 나는 독서치료와 숲 치유를 병행할 것을 설명하고 또 처방한다. 매주 미션의 중심은 언제나 숲 치유 활동이다.
이 둘의 시너지 효과는 강하고 빠르며 지속적이다. 내가 경험한 임상에서는 무척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전에 이미 여러 심리치료를 거쳤던 한 우울증 내담자는 지금껏 내가 권하는 이 통합치료만큼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 방법은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특히 이 통합적 회복 프로그램의 효과가 더 잘 나타나는 쪽이 어린이이다. 단언컨대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이 통합심리치료의 효과와 혜택은 더 크고, 또 무궁무진하다. 숲 향유는 단순히 치료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되찾아주는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최근 내가 독서치료 내담자들에게 가장 자주 권하는 치유서는 탈 벤 샤하르의 ‘완벽의 추구’이다. 일에 치이며 사는 현대인들은 완벽주의의 덫에 갇혀 인생의 의미를 상실하기 쉽다. 저자는 젊은 시절 완벽주의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망을 맛보았고, 긍정심리학자로 진로를 급선회한 것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운명적인 모색이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인생을 망가뜨리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적주의자’로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여러분들도 집 근처 숲이나 도심을 벗어난 교외의 한적한 산골을 찾아 ‘완벽의 추구’를 한 번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
반드시 깊은 마음의 병이 있지 않더라도 이는 분명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답답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상승과 회복의 느낌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숲에서 읽기 좋은 치유서 10권]
1.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2.알레한드로 융거, 클린
3.마틴 셀리그만, 긍정심리학
4.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5.리처드 칼슨,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6.탈 벤 샤하르, 완벽의 추구
7.리처드 루브,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
8.앤드류 와일, 자연치유
9.조지 베일런트, 행복의 조건
10.법정, 무소유
박민근 헬로닥터브레인 연구소 소장/ ND케어클리닉 독서치료실장
[박민근의 심리치료]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숲에서 책을 읽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