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왜 나는 동영상을 어린이 심리치료에 쓸 수밖에 없었나?
맛있는교육
기사입력 2012.07.16 16:01
  • 자랑 같지만 나는 국내 최초로 독서치료를 소아비만과 각종 어린이 성장장애에 적용해 큰 성과를 이뤘다. 그리고 치료 대상 어린이의 부모들로부터 숱한 찬사를 받았다. 나 역시도 10년 넘게 독서의 치유능력을 연구해온 노력이 멋진 결실로 나타나 무척이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무리 상세하고 눈높이에 맞춘 치료적 설명이라도 잘 납득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비만의 위험성이나 다이어트의 중요성과 관련된 책이나 영상을 접하고서는 쉽게 내용들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스토리텔링 치유가 무엇보다도 적합하다는 판단과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영국의 심리전문가 마곳 선더랜드 역시 어린이 심리치료에 있어 잘 짜인 이야기가 가진 탁월한 효과를 역설하며 장려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책을 통한 심리치료에서 적잖은 한계를 느끼고 있다. 비교적 심리적 문제가 심한 아동의 치료에 있어 책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경우를 왕왕 접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착한 아이 사탕이’라는 괜찮은 심리치료 도서가 있다. 마음에 큰 상처가 있는 아이들 가운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는 환경이나 양육조건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양육환경은 바른 성장에 있어 절대 요소이다. 나는 이 책을 기본 치유서로 소중하게 활용하고 있다.

    책 내용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결코 착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하지만 아무리 괜찮은 책이라 한들 아이에게 읽히는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적지 않다. 요즘 아이들 자체가 책이라는 매체에 시큰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한 아이 사탕이’를 책으로 읽고서는 별 감흥이 없던 아이도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플래시동화로 볼 때는 태도가 사뭇 달라진다. 이해도가 몇 배 증가한다.

    자존감과 자기정체성 문제를 다룬 ‘치킨 마스크’라는 책을 읽힐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목격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어린이의 경우 화면과 음향 자극이 주가 되는 플래시동화를 활용한, 미디어치료 비중을 높이고 있다. 

    특히 불안이나 과잉행동 증상이 심한 아이의 경우 독서에 몰입하지 못하는 사례가 더 빈번하다. 낭독을 통해 책을 다 읽어줘도 내용을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당연히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니 치료 효율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사실 미디어치료를 진행하기 전에는 아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 내용을 설명하는 편일 때가 많았다. 

    게다가 최근 영상매체와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며 아이들의 문자해득력은 낮아지고, 영상매체 친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책을 잘 못 읽거나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 가속화되는 멀티미디어 환경에서 이런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몇몇 연구에서는 요즘 아이들의 뇌 회로 자체가 문자를 통해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를 이해하는 것보다 청각신호와 움직임이 있는 영상을 통해 내용을 직관적으로 습득하는 부위가 강화되어 이런 일이 빚어진다는 경고까지 한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사실 나는 문자매체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다. 가치 있고 위대한 관념에 가닿기 위해서는 책과 독서는 놓쳐서는 안 될 황금열쇠이다. 인터넷 세상을 연 빌 게이츠조차도 자녀들의 컴퓨터 사용에는 지독시리 엄격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성공과 성장의 바탕이 어릴 적 다녔던 동네도서관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이미 사태가 벌어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최근에 심리문제를 겪는 아이들의 문자해득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형편이다. 얼마 전 치료한 한 어린이의 경우 근 1년 동안 책을 진득하게 읽어본 적이 없다고까지 고백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책이 먹힐 리 없다. 독서치료가 마치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미술치료를 권하는 꼴이 되고 만다.

    나는 성인 대상의 독서치료에서 보조적 매체로 활용되는 동영상치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았다. 그래서 수년간 아이들의 심리치료에 도움 될 만한 동영상을 수집하고 체계화하는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현재 이런 동영상을 치료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시도를 하는 분이 거의 없고, 언어와 정서가 달라 외국의 방법과 내용을 무턱대고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뛰어난 영상은 종종 아이들에게 유익한 몇 권의 책보다 더 깊은 인상과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가령 사지를 잃었지만 희망과 긍정을 놓지 않았던, 위대한 토로소맨 더스틴 카터의 다큐멘터리는 내가 빼놓지 않고 아이들에게 감상하게 하는 동영상 목록이다.

    소아우울증이나 불안증 어린이들에게 진행하는 나의 ‘낙관적인 아이’ 프로그램과도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영상물이다. 나는 치료 처음에 대상 어린이에게 이 동영상을 감상시킨다. 특히 팔과 다리가 없는 더스틴이 험난한 레슬링 시합에 나서 꿋꿋하게 맞서는 장면은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며, 아이들 역시 이 점에 깊이 공감한다.

    임상에서 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패배적인 생각에 젖은 아이들이 이와 같은 감동적인 동영상을 감상하고서 적잖은 심경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는 미디어치료라는 새로운 치료 양식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대화로 깊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성인들도 감성적인 영화나 심도 있는 다큐멘터리가 주는 심리치료 효과는 크다. 최근 영화 심리치료가 각광받는 나름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판단컨대 어린이의 경우 미디어치료는 미술이나 음악, 놀이, 연극 등을 통해 심리치료를 하는 것 이상의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따라서 향후 필수 치료로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장담컨대 나로부터 시작되어 이제 더 많은 심리치료사들이 어린이 심리치료에 다양한 동영상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또 한편 나는 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접하는 동영상들 대부분이 터무니없이 저급한 사실에 놀라곤 한다. 놀랍게도 가장 즐겁고 흥미로운 영상물이 개그 프로그램이나 폭력적인 애니메이션이 다였을 경우가 많다.

    소위 명문대를 나왔다는 부모들조차 아이들에게 ‘프리 윌리’나 ‘인생은 아름다워’같은 뛰어난 영상물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 공공연히 제공하는 유익한 플래시동화의 존재를 모를 뿐 아니라, 보여주려는 노력조차 게을리 한다는 사실에 종종 안타까움마저 느낀다. 마치 아이들에게 영상물이란 모두 저급하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은, 영상매체를 대하는 부정적인 태도는 분명 잘못이다.

    오래된 영화지만 주말에 자녀들에게, ‘길버트 그레이프’로 유명한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개 같은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한 편 보여주면 어떨까? 아이들은 타인의 성장을 관찰하며 자신의 바른 성장에 대해 고민한다.

    이 영화는 좋은 성장에 대한 풍부한 영감을 제공한다. 비록 내가 영화비평가는 아니지만 심리적 평화라는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선뜻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치유영화이다.
      
    박민근 헬로닥터브레인 연구소 소장/ ND케어클리닉 독서치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