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책을 읽지 않는 인생의 불행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9.14 11:34
  • 나는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여전히 이젠 구하기도 힘든 폴더폰을 쓰고 있다. 내 폴더폰을 본 사람마다 어김없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불편하지 않다, 전혀. 
     
    오히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조금 더 불편해 보인다고 말한다.

    쫓기듯, 갈망하듯, 연신 스마트폰을 향해 시선을 주는 당신이 되레 불편해 보인다고.

    사실 내가 스마트폰을 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요물이 내 독서시간을 빼앗을까 저어하기 때문이다. 이미 내 우려대로 되고만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다는 출판계에는 ‘비가역적인’ 지배 정서가 있다. 그것은 일종의 책의 종말론 같은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이제 더 이상 종이 책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절망감이 팽배해 있다.

    점점 더 사람들을 책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나도 이 예측을 부정하지 않는다. 니콜라스 카의《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는 그런 미래가 끔찍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류가 창조한 신묘한 발명품인 책을 더 이상 사람들이
    즐겨 읽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는 심리상담에서 독서치료라는 조금은 특별한 상담 방법을 활용한다. 독서치료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책 읽기를 통해 치유를 모색하는 유서 깊고 효율적인 심리치료 방법이다. 그래서 내 상담에서는 거의 내담자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상황이 도래한다.  

    상담을 어느 정도 진행해 내담자에게 심적 안정이 깃들면, 상담했던 그간의 정황과 내담자의 특성을 고려해 나는 도움이 될 만한 몇 권의 치유서를 권한다. 으레 그들은 치유서를 읽고 정신적 해방감을 맛본다. 당연히 독서치료 내담자 가운데 효과가 더 크고 확실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독서에 대한 애정이 깊고 독서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물론 평소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사람들에게서도 효과는 나타날 수 있지만, 그들에게 권하는 치유서는 난이도와 수준을 잘 조절해야만 하는 한계를 갖는다. 

    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최고의 선물은 정신적 위안과 삶에 대한 통찰이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상처나 심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역시 책이 가진 이런 치유 역능 덕분이다.

    꼭 심리치료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우리가 나날의 삶을 견디게 하는 원천들 가운데는 책에서 얻은 위로나 지혜가 차지하는 몫이 클 것이다.

    사람들이 즐기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 게임이나 SNS에서도 그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나, 책이 가져다주는 큰 혜택과 비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책이 주는 통찰이나 위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척박하고 위태로운 인생이겠는가?

    “인생은 고통이다(Life is difficult).”

    스캇 펙 박사의《아직도 가야 할 길》의 처음을 여는 문장이다. 그의 표현대로 인간이란 고통 속에 살며, 아주 가끔 찾아오는 기쁨에 반색하고, 그 기억의 부스러기를 간직하며 생을 버텨가는 연민한 존재이다.

    나 역시 삶은 단지 고통과 고행일 따름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살면서 두 번의 큰 시련을 맞았다. 17살 때, 그리고 서른 즈음이었다. 17살 때 내게 깊은 치유를 가져다준 책은 헤르만 헤세의《데미안》이었다. 그리고 서른 즈음 내게 커다란 정신적 해방감을 안겨주었던 책은 이《아직도 가야 할 길》와 빅터 프랭클의《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었다.

    꼭 내 경험 때문이 아니라도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이상적인 치유서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심리상담과 독서치료에 10년 이상 치유서로 활용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사실 최근 들어 나는 이 책을 내담자들에게 자주 권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내담자들 가운데는 책이 너무 어려워 치유가 되기보다는 고통이 된다고 호소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을 다룬 전문서적이 아님에도 내담자의 읽기 능력이나 숙달에 따라 어떤 치유서는 이렇게 애초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또 치유서로 효과를 보기 힘든 또 한 부류는 급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속도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든 것에서 더 빠른 속도를 요청한다. 책 역시 정복의 대상이나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무서운 속도로 책을 읽거나 비정상적으로 책을 많이 읽는 것, 전투적으로 책을 대하는 태도를 권장하는 풍속도가 생겼고, 이를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독서란 느릴수록 더 깊이, 더 폭넓게 세계의 심층에 가닿을 수 있게 해주는 원체험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슬로리딩이 국민적 이슈가 되는 실정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느린 책 읽기를 주장하는 것부터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편견이 만연해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느리게 읽기, 느리게 생각하기, 느리게 살아보기 같은 주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빨리 가서 얻을 건 병들고, 늙고 죽는 일 밖에 없는 걸요.”
     
    예전 상담했던 지훈씨도 그랬다. 명문대를 나온 그는 취직 후 항상 쫓기듯 회사생활을 하면서 심성도 급하고 참을성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회사우울증이 심했다. 수명장애도 심해 수면제를 상복하고 있었다. 일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가기 싫은 마음이 솟구쳐 우울하고 무기력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와 생의 고통이라는 철학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에게도《아직도 가야 할 길》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보라 했다. 하지만 이 책들은 그에게서 감응을 주지 못했다. 기호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급한 독서 습관 때문이었다.

    대화를 나누며 그가 책마저도 너무 급하게 읽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린 처방은 역시 느리게 살기, 느리게 생각하기, 느리게 읽기였다.

    내가 권한 여러 권의 책 가운데는 영문학자 데이비드 미킥스의《느리게 읽기》라는 독서 참고서도 있었다. 국내에 나온 책 가운데 느리게 읽기라는 주제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지도서일 것이다. 뜻밖에도 이 책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자신이 놓치고 사는 진실을 깨닫게 한 책이라고 했다.

    미킥스 교수는《느리게 읽기》의 맺음말에서 영국의 대수필가 찰스 램의 <순리를 거스르는 독자들>이라는 에세이의 한 부분을 인용하며 당대의 독서 풍조에 대해 비판한다. 인용된 찰스 램의 에세이에는 본질을 놓치고 있는 독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현대의 진기한 놀이들이 재앙처럼 우리를 덮치기 전, 옛 책을 읽으며 순수한 즐거움을 만끽했던 시절이여, 이젠 안녕!”이라며 애석함을 감추지 못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미킥스 역시 램의 생각에 동감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가 1825년에 쓴 이 한탄 어린 글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꼭 들어맞는다. 복잡하고 분주한 정보의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현대의 진기한 놀이들”이라는 현란한 전염병에 걸렸고, 그 유행을 따라가고 평가하느라 진을 빼고 있다. 램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즐겁기” 위한 독서를 하는 대신 클릭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 글을 읽는다. 게리 슈테인가르트의 재미있는 소설,《가장 슬프고 진실한 사랑 이야기Super Sad True Love Story(국내 미번역)》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독서를 전적으로 경멸하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휴대용 기기에 끊임없이 뜨는 가십성 정보를 검색할 뿐 독서는 하지 않는다.”

    소설가 슈테인가르트의 상상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해럴드 블룸은 “우정이 너무 취약하고, 위축되거나 사라지기 쉬우며, 공간과 시간과 불완전한 연민, 그리고 가정과 애정 생활의 온갖 슬픔으로 짓눌리기” 쉬운 우리에게 책은 세상을 알고, 삶과 타인을 통찰하고 수용하게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책이 사라진 삶에서 무엇이 그 고통의 심연을 이해하게 해줄까? 급박하고 유행을 따르는 일 대신, 미킥스는 우리의 부서진 인생을 견고하게 지켜줄 성채와 같은 책, 열렬하면서도 순수한 독서를 당부하며 글을 맺는다.

    “우리는 설령 아프게 부서진다 해도 마음을 열어 줄 책을 원한다. 해럴드 블룸이 주장하듯,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독창적인 무언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경험을 독서에서 찾고자 한다. 이러한 새로움이 우리 안에서 자리를 잡으면 일어나 그것을 얼싸안는다. 이렇게 그것은 우리의 일부가 되고, 우리는 책을 다시 집어 드는 단순한 행동 하나로 언제든 그것을 다시 얻을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디지털 기술이 훨씬 더 빠르고 기발하지만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접속 방식을 제안하며 우리를 끊임없이 좌절시킨다. 우리는 최신 정보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서서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찬양하는 느리게 읽기의 보상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