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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나 TV마다 열심히 음식을 먹는, 아니 게걸스럽게 음식을 집어삼킨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다. 소위 ‘먹방’이라는 것이다. 의식주가 인간 생존의 기초니, 방송에서 먹는 일을 자주 만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까운 전파를 먹는 장면 보여주는 일에 한없이 할애하는 것은 분명 낭비다. 꼭 보여주고, 알려주어야 할 소중한 정보와 영상들은 더 많을 텐데. 아무튼 먹방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아이템인 것 같다. 재미없는 프로그램들일수록 억지로 먹방 장면을 끼워 넣어 조금이라도 시청률을 높이려고 혈안이다.
먹방은 분명 먹방을 보는 이로 하여금 만족감을 느끼고, 흥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우리는 누가 게걸스럽게 먹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것은 정신적으로 이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 음식은 어떤 면에서 정상성을 잃었다. 음식은 점점 탐욕과 미식의 정복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마음연구가들은 언제나 천천히 정성스럽게 음식을 음미하기를 추천한다.
나는 많은 소아비만 아이들을 독서치료로 치료했다. 바른 식습관에 대한 지식과 지혜로 인지행동교정을 돕는 일이었다. 아이들 가운데는 음식에 대한 조절력을 잃어 끝없이, 심지어 위에서 통증을 느끼면서까지 음식을 집어삼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피자를 먹고, 또 햄버거를 먹은 뒤 위가 찢어질 것처럼 아파도 다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소아비만 아이들의 속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개 그 안에는 우울과 불안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우울해서, 불안해서 음식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음식에 중독되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지금 음식중독은 매우 큰 사회적 이슈이다.
이제는 거장이라고 불러야 할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애니메이션 <월-E>에서 낭비와 무절제로 지구를 망친 인류는 제대로 걸음마도 걷지 못하는 뚱뚱하고 게으른 존재로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속의 인간들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끊임없이 무언가를 집어삼키고 있다. 음식은 불안과 불쾌를 줄여준다. 불안을 음식으로 푸는 것은 지극히 생리적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한 과학적 진실은 지속된 스트레스가 불안 수준을 높이면서 식욕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알론 첸 박사팀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신경전달물질인 유로코틴-3(urocortin-3, Ucn3)에서 그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유로코틴-3는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될 때 우리 뇌에서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듯 두 부위로 빠르게 전달된다. 한쪽은 복내측 시상하부(ventromedial hypothalamus)라는 곳으로 주로 배고픔이나 안정감과 관련이 깊은 부위이고, 다른 한쪽은 외측 중격(lateral septum)이라는 불안과 관련된 부위이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뇌의 불안시스템이 켜지는 동시에, 음식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불안, 음식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들인다. 좋은 말로 풀자면, 음식이 영혼에 안식을 주는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말했듯,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가 있다’.
결국 이런 무의식적 메커니즘이 뇌에 새겨진다. 스트레스 받는다. 불안하다. 먹고 싶다. 이 연쇄반응으로 음식을 먹는다. 불안이 줄어든다.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사실 이는 문제의 근원을 찾거나 잘못된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 문제가 풀릴 수 없다고 단념하고 나면 현실적 대응 대신에 음식을, ‘먹방’과 먹방을 따라 폭식하기에 자신을 내맡기고 마는 것이다.
세상의 불안감이 증폭될수록 우리 주변에는 음식갈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나 세상은 한편으로는 많이 먹지 않아야만 얻을 수 있는 마른 몸에 대한 억압적 신화 역시 우리, 특히 여성에게 강요된다. 마른 몸이어야 아름답다와 같은 현대적 믿음. 사실 이는 진화적 사실은 아니다. 사회통념보다 우리 본성이 조금 더 본능적으로 끌리는 몸매는 조금 통통한 것이라고 한다. 결혼적령기 남성은 본능적으로 아주 마른 여성보다는 조금은 통통한 여성을 결혼상대자로 선호한다. 더 아이를 잘 낳고 잘 기를 것이라는 무의식적 선택 때문이다.
어쨌든 매체를 가득 채운 몸의 이미지는 지나치리만치 말랐다. 주 피해자는 결국 여성이다. 많은 여성들은 불안해서 이를 음식으로 풀고 싶다는 욕망과 마른 몸을 가져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를 원하는 욕구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현진씨는 음식과 몸매 사이에서 몹시 고통스러워하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독서치료와 심리상담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만났던 그녀는 내가 보기에는 딱 좋은 모습이었지만, 자기 자신이 살이 쪄 추해 보인다는, 그래서 무척 고민스럽다는 말을 되뇌었다.
완벽주의에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인 그녀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대개 며칠은 잘 참다가 결국 무너져 음식으로 그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다음 날 체중계에 올라서면 또 다시 자책과 후회에 시달리며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것이다. 폭식과 다이어트를 오가던 그녀의 외모는 그래서인지, 볼 때마다 변화무쌍했다. 어떤 날은 사흘은 굶은 사람처럼 핼쑥해져 나타났다가, 또 다음에는 몸무게가 꽤 불어보이고, 그와 함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쌀이 쪄 생긴 불안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결국 그녀는 참다 참다 무너져 며칠 간 먹방 연기자보다 더 게걸스럽게 음식을 집어삼키는 음식중독의 삶을 사는, 위태로운 시소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날 깁스를 하고 그녀가 나타났다. 걱정스러워 왜냐고 물었더니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자기도 의아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인데, 골다공증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날은 일은 제쳐두고 한참을 울먹울먹하는 그녀의 신세한탄과 고민을 들어야 했다.
물론 불안과 식탐의 연결고리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증상이 사라졌지만, 내 아내는 오랫동안 불안해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키가 평균 이상인데도 체중이 47kg까지 나간 적이 있다. 식이장애 가운데 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이란 것이 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성격적으로 예민해 생각이 많아지면 그 때문에 끼니를 거르거나 먹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선망하는 상황이지만 이 역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안을 음식으로 달래는 사람의 비중이 훨씬 높다. 나 역시 한때 체중이 지금보다 10kg 이상 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때 역시 불안이 정점에 다다랐던 때였다.
왜 우리는 불안을 음식으로 달래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삶이 너무 빡빡해지고, 위축되어서일 것이다.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현대인은 도시에 갇히고 말았다. 대지를 달리던, 들판을 한없이 돌아다니던 시대가 끝나며 삶의 반경은 갈수록 좁아지고 밀집되었다. 우리는 음식이나 소비, 의존 대상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일 말고는 더 나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예전 비만과 관련한 실험 영상에서 콘크리트 상자에 쥐를 넣고 밤에도 조명을 끄지 않게 해 스트레스를 유발했더니, 같은 조건의 나무상자 안 쥐보다 훨씬 많은 사료를 먹어 결국 비만이 되고 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차가운 도시의 삶은 불안과 식욕, TV 속 ‘먹방’ 없이는 살기 힘든 환경이다. 그 콘크리트 상자 안의 쥐가 어쩐지 우리들처럼 느껴진다.
풍족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음식만큼 손쉬운 위안의 대상은 없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정상적인 심리를 잃으면 영혼도, 신체도 곧 병들어간다. 무수한 외압에 시달리는 현대인은 삶과 일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너무나 일상적이고 소중한 음식조차 이제는 극복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먹방’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