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우울증과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는 법②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6.15 10:46
  •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던 공부노역으로 공부상처가 깊었던 K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호전되면서 K는 내 독서치료 과정도 잘 수행했다. K와 가장 열심히 함께 읽었던 치유서는《필링 굿》이었다. 아론 벡이 인정한 인지행동치료 전문가 데이비드 번스 박사의《필링 굿》은 인지행동교정에 관한 한 모범적인 교과서이다. 실제로 번스 박사는 우울증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필링 굿》읽기, 즉 책의 방법을 따라 생각 연습하기가 가져다주는 치료 효과를 직접 검증한 바 있다. 이는 독서치료의 임상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중요한 연구결과이기도 하다. 책에는 그가 수십 년간의 우울증 인지행동치료 경험을 통해 확인한 여러 인지교정 기법과 구체적 활용법이 담겨 있다.

    최근 들어 화가 자주, 그리고 많이 난다는 K는 심한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을 가는 일 외에는(그마저도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잦았다) 어떤 일에서도 쉽게 의욕을 내기 어려웠다. 첫 상담에서 그는 어떤 날은 머리 감을 의욕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상담 초반에는 감지 않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채 상담을 받으러온 적이 많았다.

    그런 그를 위해《필링 굿》의 다음 내용을 보여준 적이 있다. 우울한 내담자를 만나면 거의 예외 없이 보이는 내용이다. 이 표 역시 앨버트 앨리스의 ABC모델을 그대로 따르지만, 내용 전개가 매끄러워 그 구조를 미처 감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 ‘무기력 순환 과정’ 표는 종일 침대에서만 뒹굴 거리는 우울한 사람의 머릿속 풍경이기도 하다. 우울증을 앓거나 우울감이 심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의욕 상실의 심리, 행동 패턴을 잘 묘사하고 있다. K군 역시 이 표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도표를 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K군은 이내 숨겨왔던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내 미래가 무섭고, 걱정되고, 암담해요. 그리고 지금 슬프고 막막하고 너무너무 화가 나요.”

    나는 그런데, 그런 것이 인간이라고 했다. 인생은 고통스럽고, 슬프며 화가 나는 일들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이지만, 희망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오늘과 내일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너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라고도.

    K군에게 말 못할 삶의 딜레마는 엄마였다. K가 우울해진 데는 엄마의 지나친 학습강요가 큰 원인이었다. 그에게 엄마는 이중적 존재였다. 엄마는 미우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엄마나 그러하겠지만, 늘 사랑하는 마음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K에게 거는 기대 또한 막대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웠지만, 자신을 혹사시키는 엄마가 밉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상담 때마다 엄마가 너무 밉지 라는 말을 내가 대신 해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을 미끼로 어릴 적 감당하기 힘든 공부를 강요했던 엄마에 대한 미움을 거두라고 했다. 엄마가 그러했던 의도가 분명 미움에서 온 것도 아니었고, 또 미움이란 다시 미움을 낳는 뿐이니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부질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오염된 생각들이 한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는 기적의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희망을 전했다.

    나는 ‘무기력하다’라는 생각이나 무의욕의 감정상태는 편향된 사고가 만들어낸 뇌의 화학작용일 따름이다.

    한 때 우울증이 깊어져 죽음까지 생각했던 나는 그 마음을, 우울이 삶을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생각의 연쇄를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대개 착각의 미로에 빠져 스스로 만들어낸 머릿속 괴물이다. 합당한 생각을 단련하고 바른 생각의 길을 온전히 디자인하면 어느 순간 괴물은 희미한 자취조차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 말끔한 생각세척에 여러분 역시 놀랄 것이다. 

    쓸데없이 우울한 괴물에게 먹이를 던지지 마라. “나 같은 게 어떻게 그걸 하겠어.” 같은 생각은 내 머릿속 흉측한 괴물이 가장 즐기는 먹잇감이다. 생각은 넘쳐나지만, 애써 받아들일 생각도 있고, 잘 생각해 과감히 내다버릴 생각도 있는 법이다.

    만약 《필링 굿》만으로 내면의 부정적 생각다발의 제거가 미진했다면, 다음 책들에 더 도전해보기 바란다. 마틴 셀리그만은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이다. 긍정심리학은 21세기에 가장 주목받는 학문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낙관성 학습》에는 불합리한 사고를 제거하는 수준을 넘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회복하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이 책으로 감사하고 긍정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져보기 바란다. 
    자기내면으로 조금 더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다. 스콧 스프라들린의《감정조절설명서》역시 감정과 생각의 오류를 발견하고 정상적 생각으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통합적인 인지행동교정 방법을 제시한다. 변증법적 행동치료의 실용적, 글쓰기 치유서이다. 이 책의 이론적 바탕이 된 변증법적 행동치료는 불교명상을 적극적으로 현대적 심리치료에 적용한 것으로, 까다로운 정신분열증이나 성격장애 치료에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명심하라. 우울은 생각의 병이다. 생각을 바꾸면 우울은 분명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