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왜 더 풍족해질수록 우울해지는 걸까?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5.04.27 10:00
  •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삶을 사는 현대인, 특히 선진국 국민들에게 왜 이다지도 우울증이 급증하는 것일까? 삶이 불행하다고 믿을까? 많은 연구에서 재정적 성공은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일정 수입 이상부터는 경제적 성공이 오히려 삶의 질을 훼손한다는 연구 역시 많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적 여유나 인간관계 유지라는 중대한 부분을 저당 잡히면 그만큼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줄어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나 설명이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리 실감나게 와 닿지는 않는 듯하다.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돈을 잘 벌지 못한다면, 재정적인 안정을 이루지 못하면 삶은 불안과 불행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돈과 행복에 대한 연구는 연구일 뿐, 자신의 현실감은 그런 통계와는 사뭇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런 한국인의 의식을 분석하는 많은 관점들이 존재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고전적인 것은 일찍이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물신주의(物神主義, fetishism)라는 개념이다. 돈이라는 사물이 신적 위상을 가지며 인간관계와 심성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간의 관계는 사물적 성격을 띠는데, 이러한 사물성은 그 엄격하고 완전히 빈틈없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법칙성 속에서 인간의 관계가 가진 본질의 모든 흔적을 덮어서 감추어버린다”고 말했다. 우리는 너와 나 사이에 사물성이 깃든 지금의 관계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채, 돈과 물질로 덧칠해진 현실을 진짜 현실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쉽게 풀이하면, 인간과 인간은 원래 이타성과 상호이해, 사랑의 관계지만 돈이 재구성한 관계는 단지 재화를 주고받으며 상품을 인간에 우선하며 물질적 가치만을 교환하는 소외된 관계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비근하게 한 못난 사장이 “너에게 나는 월급 100만원을 지급했으니, 주 40시간 한 달 간 너의 노동력은 내 차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심리연구에서는 더 많아진 돈이 가져다주는 인간소외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 바스 카스트는 돈이 불행의 씨앗이라는 점을 조목조목 되짚어준다. 돈은 실제로 사람들 사이를 멀어지게 한다.

    “돈에는 인간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독특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이 효과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체험한 것이고 심리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찍은 실험이 있었다. 사진 분석 결과, 부유한 상류계층의 아이들은 중산층의 아이들보다 서로 먼 거리를 유지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나는 카스트의 해석을 하나씩 되짚으며, 문득 예전 사이비 종교에 빠졌던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그 종교에 빠지기 전에는 친구들 사이에 평판도 좋고 관계도 괜찮았던 녀석이다. 하지만 어느날 종단에서 완전히 내쳐진 사이비 종교에 빠지며 급격히 달라졌다. 친구들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녀석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으며, 그는 뭔가 대단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허황한 말들을 내뱉고 다녔다. 스톡홀롬 신드롬(Stockholm syndrome)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이 인질범을 사랑하거나 신처럼 추앙하는 심리이다. 극한 상황에서 강자의 논리에 약자의 마음이 동화되는 심리를 나타낸 말이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하고 위기에 빠뜨리는 가해자에게 동경이나 연민, 사랑의 마음을 갖고 마는 왜곡된 심리를 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모두는 돈에 대해 이런 인질심리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당신이나 나 역시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도일지 모른다. 제대로 깨닫고 각성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돈이 가져다주는 환상과 안락을 이상화하며 ‘그’를 동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카스트는 돈을 추앙하는 일은 결국 불행으로 달려가는, 좀 더 정확히 말해 우울증으로 치달리는 급행열차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돈이 개입되거나 연상될 때는 사회적인 성향이 줄어들고 개인적인 경향이 늘어났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는 욕구가 적었고, 또 역으로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성향도 약했다. 중요한 일을 혼자서 처리하고 싶은지 아니면 파트너와 함께 처리하고 싶은지를 물으면, 돈이 많은 사람들은 혼자서 처리하는 쪽을 택한다. 따라서 돈은 타인을 차단하고 독자성을 띠게 하며 비사회적인 성격을 강화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