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가면을 쓴 나를 만났을 때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5.02.24 10:02
  • 사람들은 ‘이것이 바로 나’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그런데 그 가면을 쓴 ‘나’는 실제 나와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시인 이상의 시 <거울>처럼 “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지만 그 ‘나’는 거울 바깥에 서서 세상을 살아가는 실제 나와는 다르다. 살다보면 둘 중, 아니 여러 자아 가운데 무엇이 진짜일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가끔 가면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가면 우울증(Masked depression)은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우울감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성미씨 역시 그랬다. 한 공공기관 콜센터에서 일하던 성미씨는 두 사람의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앞에서조차 연신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마음은 내내 울고 있었다. 8년 가까이 감정노동자로 일하며 언제부턴가 속마음과는 달리 늘 웃음 띤 얼굴을 하는 ‘스마일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이 시간이 가면서 가면 우울증으로까지 발전했다고.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그녀는 어느 순간 성공하고 인정받기 위해 웃고 있는 것이 나인지, 우울한 나머지 마냥 눈물짓는 것이 나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그녀는 이 상황을 종료하기 위해 나와 함께 꽤 오래 자신의 정확한 감정을 포착하는 연습과 자기주장 훈련을 위한 글쓰기치료를 했다.

    우울은 한 사람에게 자기발견의 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 역시 깊은 우울을 통해 내 자화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내게는 큰 선물이었다. 우울감의 가치는 그런 것이다. 우울은 진정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강요된 감정과 열망과 욕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본심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할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우울한 나’이기 때문이다. 그때 올바른 자세는 우울한 나를 한껏 안아주는 것이다.

    “나야, 나, 내가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며 꼭 안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면과 위선들이 난무하고, 서로에게 서로가 가면을 씌우려고 강요하고 설득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성미씨에게도 우울감이 가진 가치를 이렇게 설명하며 한 편의 시를 건넸었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였다. 시인은 자기를 지키기 힘들었던 시대와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참으로 영롱한 삶을 살았다. 올해는 그가 옥에서 목숨을 거둔 지 7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육첩방은 남의 나라/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처럼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공부 못하는 아이는 없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