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사이코패스를 기르는 사회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2.15 09:51
  • 그들은 왜 그토록 타인의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걸까? 최근 쏟아지는 뉴스들을 접하며 드는 생각이다.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들에게 타인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으면 결국 ‘니’가 손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세뇌하는 탓일까? 단지 의도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눈감고, 이타심의 스위치를 꺼버리는 것일까?

    하지만 그 내막이 단지 의도적인 공감제로로 보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사건의 막후에 서있는 자들은 애초 공감능력이나 이타성을 제대로 교육받거나 성장시키지 못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최근 뉴스를 채운, 사소한 자기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의사 이야기나 조그만 불만 때문에 ‘을’의 쓰라리고 위태로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갑질’을 해대는 ‘수퍼갑’의 모습은 병적 사이코패스는 아닐지언정 ‘사이코패스적’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승냥이와 같았을 인류는 이타성과 공감능력은 늘리고, 공격성과 악마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어떻게 악마적 본성을 가졌을 고대 인류가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이타성을 무장하게 되었을지에 대해 연구한다. 가설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인류의 공감능력이 점점 발달하고 군집사회를 이루면서 공감능력이 몹시 부족한 구성원을 조직적으로 무리에서 제거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무리생활을 해치거나 다른 구성원의 위해하는 악마적 인간을 살육이나 추방을 통해, 혹은 철저한 짝짓기 배제를 통해 유전자를 걸려냈을 거라고 추리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현생 인류가 보유한 높은 공감능력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폐성과 공감능력에 대한 연구로 명성을 얻은 사이먼 배런코언 교수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마음맹인, 공감제로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하나는 자폐증이나 야스퍼거 증후군 같이 타인들에게 거의 위해를 가하지 않는 착한 공감제로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뇌나 정서, 인격의 손상에 의해 타인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득이나 생각에 따라 타인을 해치는 부정적인 공감제로 유형이다.

    그리고 부정적 공감제로들을 다시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 하지만, 막상 옆에 있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밀쳐 내거나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경계선 성격 장애 유형과,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며 좌절감을 느끼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이코패스 유형과, 대단히 자기중심적이며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며, 자기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은 나르시시스트 유형으로 나눈다. 통계적으로 사이코패스 유형은 100명 중 1-2명 정도 존재하지만,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상당수의 사이코패스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배런코언 교수는 이들 마음맹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의 아픔을 슬퍼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뇌 부위의 일부 기능이 떨어지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공감제로가 되는 이유는 물론, 유전적인 측면이 강하다. 아직 인류의 유전자 안에는 악마성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양육과 삶의 환경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세상이 그들의 악마성을 사육했을 거라는 충분한 추론이 가능하다.

    우리 사회를 돌이켜보면, 이제 서로를 아끼고, 타인을 보듬으며, 공동선을 가꾸라는 오랜 덕목들이 무색해졌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생각해볼 때 반세기 이상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자신과, 가족, 자녀들에게 남의 마음을 무시하라고 독려하고 다그쳐왔다. 이기고, 넘어뜨리고, 상대의 것을 뺏으라고 설득해왔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기르고 또 눈감아왔던, 그 수많은 공감제로의 습벽이 이 사회에 위협적인 절벽을 만들어냈고,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야수의 난동으로 돌연 벼랑 저 아래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마인드체인지 심리상담센터 원장(더꼼마&김동철심리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