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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중략)……/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 살벌하도록 무서운 시는 1934년 시인 이상이 쓴 <오감도>라는 작품이다. 시에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두려운 청춘의 어두운 내면이 드러나 있다. 그가 몸이 좋지 않았던 데다 당시 평균수명이 45세 전후였으니, 죽음을 걱정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 역사의식이 거의 없던 그였다지만, 식민지 현실이 그림자를 드리웠을 수도 있고, 하는 사업마다 망하는데다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앞날이 갑갑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기발함과 천재적 발상의 소유자였던 그는 현대인의 표정을 이렇게 몇 줄의 시로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80년이 지났지만, 이 시는 낡지 않았다. 심리상담을 하며 만나는 청춘의 표정은 이 시의 두려움을 답습하고 있다. 혹 지하철에서 만나는 여염의 젊은이들 역시 그런 표정을 짓고들 있다.
지금의 일본은 당면한 우리의 어두운 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제를 전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짜인지 과장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경제가 일본이 경험했던 잃어버린 20년을 곧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있고, 사회심리학자들 가운데는 참혹한 역사가 사회적 트라우마를 드리운 일본사회와 거의 흡사하게, 그 역사를 공유했던 우리의, 깊고 단단한 사회역사적 트라우마가 우리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며, 우리의 불안한 집단무의식을 분석하기도 한다.
일본인의 불안은 어떤 것일까? 일본연구가인 권혁태는 일본인의 집단심리를 내적 분열, 트라우마, 자기기만, 불안이라는 네 가지 잣대로 풀어내고 있다. 전쟁과 원폭, 패망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트라우마를 경험한 일본인들은 내면에서 극단적인 두 가지 감정, 평화와 패권주의가 병존한다. 전쟁과 죽음이 없고 서로 갈등하지 않는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과 더불어 강자에게 더 이상 굴복당하지 않고 싶은 권력 열망이 동시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기만 역시 이런 분열된 내면이 흔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이다.
혹은 원폭의 상흔일 수도 있다. 히로시마에 거대한 불기둥이 타오르던 모습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내심 고소한 심정을 갖게 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지만, 일본인에게는 마음 깊이 또 누군가에게 엄청난 린치를 당할지 모르니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불안심리가 스며들게 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도 ‘힘이 약해지면 언제 너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잠재해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사는 일본의 개인이야 이런 집단무의식을 의식하며 살진 않겠지만, 문화에 새겨진 사회적 정신불열증이 억압과 불안의 형태로 개인심리를 디자인하고 있을 것이다.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현대 일본인들이 짓고 있는 불안한 표정 속에는 이런 배경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매일 화산이 터지고, 지진과 태풍이 끊이지 않고, 원자로가 유출되고 하니 마냥 불안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모자라지 않은 것이 우리의 불안심리이다. 우리 마음에는 2002년 월드컵처럼 성공의 희열이 짜릿하게 불타오르던 집단도취도 있겠지만, 생존본능을 강하게 단련한, 우리 역사나 사회가 개인에게 각인시킨, ‘당하지 않으려면 이겨야 해, 지는 순간 너는 죽는 거야’ 같은 불안의 감각이 내재해있다. 그래서 오늘도 서로 마주한 사람들끼리 ‘무서워하는아해’의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알고 지냈던 예전 한 친구는 어쩌면 그런 불안을 몸소 겪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10년 전까지 알았던 그 친구는 외고를 나오고, 서울 안의 명문대를 나온 수재였다. 술에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자 우리는 한참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13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도 마치기 전에 공장생활을 시작했던 가난했지만 훌륭한 내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친구는 겨우 예닐곱 살에 아버지를 북에 두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한강을 건넌 불쌍하면서도 두려운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아버지는 늘 자신을 미칠 듯 닦달했다. 아버지 자신도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과 돈을 위해 인생을 소진했고, 자식 역시도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죽음을 불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작은 실수로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을 때마다 그는 불안과 두려움과 슬픔을 느꼈다. 내게는 솔직히 말하지 않았으나, 그는 그때마다 두려움에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을 것이고 공포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자주 했다던 이야기이다.
“내 삼팔 선 넘어올 때, 숨이 가빠 죽을 것 같았던 게 아니라, 엄마 손을 놓치면 내가 곧 죽을 것 같았던 게다.”
지금은 연락이 끊겨 소식을 모르지만, 그 친구의 불안이 조금은 누그러졌으면 한다. 나만큼 자기의 불안을 잡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지금 이 순간도 몹시 불안해하고 있을는지 모른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힐링스토리] 우리가 그토록 두려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