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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씨는 몇 달 전 한 남자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다. 그로 인해 불안장애와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불면증도 심했다. 호정씨를 만나기 전, 그 남자는 한 여자와 오래 사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유부녀였다. 남자는 비도덕적이고 파괴적인 그 여자와의 관계를 청산하려고 호정씨와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기도 전 남자는 또 다시 그 여자와 만나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결국 호정씨는 남자와 헤어졌다. 그리고 마음에 애증이 들끓어 올랐다. 증오스럽고 역겨웠지만, 한편 너무 깊이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치명적인 생각들이 파헤치는 상처에 약은 무용했다.
“왜 인간은 인간을 배신할까요?”
첫 상담에서 그녀가 내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리고 배신에 관한 이야기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배신’의 경험은 인간이 살며 가장 가슴 아파할 일이고, 기억이다. 어째서 인간은 도덕과 책임을 저버리고, 욕망과 이기심에 자신을 내맡기는가 하는 의문은 인간이 가장 오래 품어온 고민이기도 하다.
서른 초반, 한낱 인간이란 인간을 배신하는 존재일 따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척이나 힘겨워했던 나에게도 여태 풀리지 않는 질문이다. 배신을 저지르는 몇 가지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대개 욕망이다. 배금이나 명예욕, 욕정, 질투심 같은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에게 정성을 다했던 사람을 저버린다. 두 번째는 이기심이다. 자신의 안녕과 권세와 이익이 최고의 가치로 지배할 때 인간은 신의와 헌신을 배반한다. 세 번째는 부덕이다. 아마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 역시 이 비도덕성과 패덕일 것이다. 서로를 물고 뜯고, 인간을 욕망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사회구조가 심화되는 가운데, 인간은 쉬이 부덕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몇 푼의 돈에 영혼을 파는 자들이 속출하고, 그들은 이기심에 인간성을 내던지는 것이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 자체가 도덕적이라기보다는 개인은 대개 집단의 교의에 자신의 도덕을 맞춘다고 설명한다. 하이트의 글을 읽다보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윤리성 자체가 불의하여 이런 배신이 횡행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투명성 기구가 조사하는 투명성 지수는 사회정의를 알아보는 단초 가운데 하나이다. 조사 때마다 형편없는 우리의 투명성 지수로 미루어볼 때, 우리 사회의 부덕과 사람들의 배신 사이에는 일정 정도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다. 악마성과 악덕의 역사와 이유를 파헤친 책,《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에서 로버트 트리비스는 인간은 자기기만을 진화시켜왔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배신의 근원은 결국 어리석음, 우리의 무지였다. 호정씨는 나와의 상담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거의 완쾌되고, 표정이 점점 화사해지던 어느 날 호정씨가 심상한 표정으로 한 마디 던졌다.
“지가 인간이니까 그런 거지, 신이면 그러겠어요?”
그렇다. 신이 아니기에 저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르는 것이다. 나 역시, 안 그래도 헌신했던, 지난 상담센터에서 꽤 많은 월급을 떼이고 속이 많이 쓰리던 차에 그 말이 더할 나위 없이 많이 위로가 되었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심리치료] 배신의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