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심리치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0.13 09:31
  • 상담을 하다보면 행복할 수만은 없는, 때로는 가슴을 후벼 파는 상황을 직면한다. 지인들이 뻔하다는 듯 묻는, 상처 입은 사람을 많이 만나면 상담가의 마음도 가슴 아프게 돼서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그리 큰 마음 상함이 아니다.

    오히려, 가령 이런 것이다. 현주는 20살을 갓 넘은 친구였다. 일찌감치 불화와 갈등으로 얼룩진 집에서 가출했던 현주는 십대 후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편의점 알바 같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그러다 안타깝게도 빚에 쪼들리면서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게 되었다. 부정한 일인 줄 알지만, 몇 푼의 돈이 가져다주는 안락에 안주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면서 깊은 우울이 밀물처럼 삶을 덮쳤다. 고통이 불길처럼 타오르며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현주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삶이, 세상이 자신의 목을 조인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 전 너무 고통스러워 정신과를 찾았지만, 알량한 약 처방만 줄 뿐, 10분도 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당연히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사에게 말할 수 없었다.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상담센터를 찾은 현주는 몇 번의 상담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회복을 시작했다. 현주는 내가, 난생 처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이라고 했다. 얼마 후 나는 그 일을 그만 둘 것을 어렵게 제의했고, 힘들었지만 현주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십 만원이나 되는 상담료는 이제 벌이가 없어진데다, 짧은 아르바이트조차 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인 현주에게는 적잖은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당시 개인상담소가 아닌, 운영자가 따로 있는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마음대로 상담료를 깎아주거나 감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딱한 처지여서 그랬지만, 센터 운영자들은 왜 자꾸 상담료를 할인하느냐고 채근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다른 장소에서 따로 무료 상담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했지만, 현주는 마음은 고맙지만, 부담주기 싫다며 거절했다. 대개 역량 있는 상담가들 역시 생활인인지라(상담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넉넉지 않은 처지인 경우도 많다) 마음대로 무료 상담이나 저가의 상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주는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상담을 다섯 번도 채우지 못하고 발길을 끊었다.

    때로 불현듯 현주가 그 깊은 상처로부터 회복되었을지 걱정스럽고 안타깝다. 심리치
    료는 상처 입은 마음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줄 방법을 아는 사람이 만나는 신성하고 인간적인 대면이다. 하지만 이는 한낱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 현실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심리치료는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할 때가 많다.

    상담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상담을 해주지 않는 의사들이 여전히 있고, 너무 고액인지라 반드시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겪는 사람의 안위와 치유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제대로 모르는 것 같고, 또 그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원 확보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나는 현주에게 네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었다. 나쁜 부모와 나쁜 세상을 만나 상처 입었을 뿐이라고 했다. 현주의 사례는, 아무리 돌이켜보아도, 심리치료가 반드시 이루어졌어야 하는 당위가 있지만, 심리상담 역시 그녀에게 상처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 상처에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책임이 있기도 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기도 하다.

    나 역시 어렵게 한 걸음 내디딘 현주에게 왜 조금 더 나은 치유의 길을 제시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자책이 든다. 이런 인간적 한계와 암담한 현실이 내가 상담에서 직면하는 고통의 근원일 때가 많다.

    한낱 백일몽이지만, 어느 날에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이해하는 공적 심리치료 기관이 생겨 현주처럼 반드시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 상처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때가 오기를 마음 깊이 기원해 마지않는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