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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 권 쓰면서 강연을 다닐 기회가 많다. 강연 주제는 대개 행복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행복에 관해 평소 접하기 힘든 원리들을 설명하면, 청중들은 놀라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며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아는 행복에 관한 상식 가운데는 오류가 많다.
가령, 왜 점점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되면서도 현대인은 불행한가와 관련해 ‘쾌락적응’을 자주 설명한다. 우리는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어떤 일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벅찬 만족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 욕망에 대한 또 다른 기준이 만들어지면 행복감은 시들해지는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를 쾌락적응이라고 부른다. 전에 가졌던 욕망을 넘어서는 더 큰 욕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원하게 되고, 더 높은 수준이어야 만족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 처음 차를 사겠다고 마음먹고, 차를 고르고 살 때는 차를 사면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은 행복에 젖지만, 차를 사고 당장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은 사라지거나 더 못한 심리상황에 도달하고 만다. 지금 가진 차가 하찮아 보이고 새 차에 마음이 간다.
이런 욕망의 사이클에 사로잡히면, 무엇을 새로 가져야 행복하고 가지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가질수록 더 행복하다는 생각은 틀릴 때가 많다. 행복에 관한 최근 연구는, 진정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차분히 성찰하고, 그 사이즈를 되도록 줄이며, 처음 대상을 좋아했던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마음가짐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예전 한 기관에서 강연을 하고, 참석자들과 짧은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 한 중년여성에게서 짧지만 인상적인 자기고백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가난했고, 가정사도 원만하지 못해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십이 가까워 고교 졸업장을 땄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지금 일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서,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다. 그녀가 맡은 직책은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자주 느끼게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자신이 걸어온 역경과 성장의 삶을 떠올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임한다고 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린 날 고초를 떠올리다가, 어느 새 함빡 웃으며 현재에 대해 벅찬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녀의 성장드라마는 같이 듣는 사람은 물론이고 내게도 큰 감흥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에 대한 현명한 저울을 갖고 있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행복이지만, 그녀에게는 너무나 풍요롭고 벅찬 행복이었던 것이다.
조지 베일런트라는 행복연구가가 있다. 그는 가장 오래된 성인발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팀은 1930년대에 하버드대에 입학한 2학년생 268명과 일반인 남성 456명, 그리고 천재 여성 90명의, 76년에 걸친 인생행로와 성장을 추적하고 있다.
베일런트는 그들이 노년에 들어서거나 죽은 지금, 그 결과를 취합해 행복과 인생에 대한 진실을 세상에 내놓았다. 때로 그 결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엎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이 그러리라 믿었던 가설마저도 뒤바꾸는 결과가 있다.
“하버드 연구 대상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노년에 이른 사람과 최악의 노년에 이른 사람의 유년기를 비교해 보았을 때,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 50세쯤 되면 유아기 때의 신체건강, 형제간의 나이 터울이나 태어난 순서, 심지어 부모를 일찍 여읜 것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성인이 된 자녀가 정신 이상을 앓고 있는 경우, 모든 부모들은 아이가 영유아기 시절에 겪은 문제들(공포증이나 지나친 수줍음 등)이 18세에도 계속 나타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성인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서 60퍼센트 정도는 그와 똑같은 경험이 있다고도 회상했다. 고아로 자라난 사람이라 해도 80세 즈음이 되면 부모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복하고 기운이 넘칠 수 있다는 얘기다.”
상담을 하다보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을 빈번히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베일런트의 연구결과를 자세히 들려준다. 절망은 인생에서 단지 일시적인 일이라고. 일부 심리학자가 굳게 믿었던 ‘트라우마’가 가진 불가피성 역시 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단지 한 때의 일일 뿐이다.
나는 어린 시절 심각한 불행에 빠졌던 사람들과도 자주 상담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가고, 어떤 이는 여전히 불행한 감정에서 허우적거린다.
심각한 고난을 헤쳐 나갈 때, 마음을 상처를 치유함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어린 시절 불우한 유년기를 보내면, ‘불안정 애착’이라는 치명적인 심리문제가 생긴다. 사실 트라우마라는 불확실한 개념보다는 훨씬 명료한 심리문제이다. 그런데 이 역시 결국에는 극복될 수 있다. 배려깊고 다정다감한 배우자를 만나 그 사람에게서 지속적인 사랑과 보호를 받으면, 이 역시 안정 애착 상태로 돌아서는 것이다.
베일런트는 인생에서 ‘기쁨과 비탄은 섬세하게 직조되어 있’어서 고통에는 항시 밝은 뒷면이 존재하며, 우리는 적응과 성숙을 통해 어떠한 ‘쇳조각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다는 낙관론을 제시한다. 좌절은 단지 성장을 위한 밑거름인 것이다.
그는 또한 건강한 노년을 위해 필수적인 ‘일곱 빛깔 무지개’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금연, 일찍 담배를 끊음’, ‘역경을 이겨내고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방어기제’, ‘알코올중독이 없는 것’, ‘알맞은 체중’, ‘안정적인 결혼생활과 원만한 인간관계’, ‘운동’, ‘지속적인 교육’과 같은 일곱 요소이다. 이들이 어우러져 생활의 균형이 형성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든가, 돈을 남보다 많이 번다든가, 뜻밖의 행운을 얻는 것보다 더 균형 잡힌 노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도 알아냈다.
우리의 인생은 끝없는 성장드라마이다.
그는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나이 듦은 단지 쇠퇴나 조락이 아니라 “사회적 지평을 확장하고, 인내심을 강화하며,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성숙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
[박민근의 심리치료] 생각 치유 - 행복에 대한 오해와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