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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책 이야기 일본의 국민 작가로 국내 근대 문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읽은 사소설 그리고 고백 문학 중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 도쿄대 명예 교수가 자신의 인생의 책으로 소개하면서 유명세를 탄 책입니다. 대학 시절에 처음 읽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아니 수수께끼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네요. 인간 그리고 도대체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모든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선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선생은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했다. 어떤 때는 너무 조용해서 적막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처음부터 선생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신비함을 간직한 분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어디선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너무 고결하고 겉으로 인품과 덕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면서 범접하기 어려운 신비감이 감도는 인물이었습니다. 소설은 주인공과 화자가 다릅니다. 화자는 그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어서 그리고 가까워지고 싶어서 다가간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생에게 때로는 표현할 길 없는 먹구름이 얼굴을 스칠 때가 있었어요. 바로 조시가야 묘지를 화자와 선생이 함께 지나갈 때였죠. 그 묘지는 바로 그의 제일 친한 친구 K가 묻힌 곳입니다. 소설은 가장 친한 친구 K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신의 비밀(이 세상 아무도 모르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을 화자에게 편지(A4 용지 100장 분량)로 들려주며 자신의 생을 마감한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길고도 긴 편지의 주된 내놓은 자신은 표면적으로는 선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악인이었음을 고백하는 선생의 고해성사입니다. 선생은 자신의 인격에 상찬을 보내는 화자에게 겉으로 드러난 악인이 없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유사시에 악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선한 사람이 악인으로 변하는가? 독자들은 그게 궁금하겠죠. 화자도 그걸 물었고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을 못 했던 선생은 유서를 통해 그 대답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었어요. 가장 친한 친구 K와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설에는 K에 대한 우정과 질투 그리고 둘 사이에서 고뇌하는 마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공감되게 묘사되고 있어요. K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 당시는 각성이라든지, 새로운 생활이라는 말이 아직 생소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K가 과거의 생활 자세를 미련 없이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지 못한 것은 그에게 현대적인 사고방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미련 없이 내버릴 수 없는 고귀한 과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것 하나를 믿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K가 사랑의 목적물을 향해 돌진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그 사랑이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해도 그는 함부로 행동 할 수 없었습니다. 앞뒤 상황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K는 반드시 감정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지난날의 자세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현대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집과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두 가지 점에 대해서만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쓰인 1900년대 초반 일본에서도 자유 연애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입니다. 전통적 가치관의 자장 속에 있던 K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하게 억누르고자 했죠. 그런 그를 선생은 친구이자 스승으로 존경했고 진심으로 좋아했어요. 그러나 그녀에 대한 감정 때문에 그는 K를 점점 친구가 아닌 연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K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휘청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챈 나는 단 일격으로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만 착안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의 허를 틈탔습니다.”
선생은 K가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합니다. 향상심이 없는 바보. 그 말을 들은 K의 마음은 무척 아팠습니다. 선생은 복수 이상의 잔혹한 의도로 그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로 K의 연애를 막고 싶었던 것이었죠. 선생의 유서를 보면 그 친구에게 그런 말을 했을 당시에도 결코 마음은 편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사랑의 감정은 우정을 압도합니다. 선생은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티를 친구에게 전혀 안 내고 조용히 사랑하는 여인의 어머니에게 다가갑니다. 그 와중에서 그의 마음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내 양심이 K에 대해 다시 살아난 것은 내가 집의 격자문을 열고 현관에서 객실로 갈 때, 즉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방을 지나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느 때처럼 책에서 눈을 들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이제 오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병은 다 나았니? 의사한테 가보았니?" 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었습니다.”
K는 사랑하는 여인의 어머니로부터 두 사람(친구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그날 밤 자살을 해버립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싸늘한 시체로 변한 사실을 발견한 선생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무서웠을까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웠을까요?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란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받은 첫 느낌은 K로부터 갑자기 사랑의 고백을 들었을 때와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가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과 자기와 제일 친한 친구의 시체와 유서를 보았을 때 그 느낌이 동일하다니, 이 얼마나 솔직한 인간의 마음인가요!
그 친한 친구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유서를 썼을 때 그는 다른 무엇보다 그것을 걱정합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그의 어머니가 자신을 경멸할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다행히 유서에 그런 내용이 없음을 알게 되자, 세상에 그는 그 자리에서 안도의 숨을 쉽니다.
사실 유서의 내용은 너무 슬펐어요. 그리고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선생의 표현을 빌면 추상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은 의지가 약하고 결단성이 없어서 도저히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자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후 처리도 부탁한다는 사무적인 내용까지 적혀 있었지만 더욱 슬프게도 유서 속에 사랑하는 그 여자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연적이 죽고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얻었는데 선생의 마음은 행복했을까요?
“죽은 벗에 대한 그러한 느낌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습니다. 실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을 두려워했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결혼마저 불안감에 휩싸인 채 치렀다고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나 역시 자신의 앞날조차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어쩌면 그것이 나의 의식을 뒤바꾸고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불빛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으로서 언제나 아내와 얼굴을 대하고 있다 보니, 나의 헛된 희망은 호된 현실 앞에서 드디어 어이없게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아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갑자기 K가 생각나서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괴로워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지요. 그 이유는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기억에, 아내의 순수한 영혼에 한 점의 오점이라도 도저히 가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 자신의 말 못할 비밀을 항상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요? 드디어 선생님은 K가 자살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연적에게 사랑을 빼앗긴 실연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K가 죽고 나서 느꼈던 극단적인 외로움과 공허감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선생은 메이지 천황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사한 노기 대장의 기사를 봅니다. 노기 대장은 서남 전쟁에서 군기를 빼앗긴 치욕으로 죽음을 선택하려 했지만 죽을 순간을 위해 35년을 기다리다 메이지 천황이 죽자 드디어 자살을 감행한 인물입니다. 그는 노기 대장을 떠올리며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그에게는 살아 있던 35년이 괴로웠을까,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르는 순간이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노기대장처럼 죽기로 결심한 이후 그는 10일 동안 자신의 자서전을 편지 형태로 쓰면서 인생을 정리합니다. 이 소설 마지막에 선생의 진짜 마음이 드러납니다. 그의 마음을 지켜보는 저는 언제나 아픕니다.
“나는 아내에게는 아무 것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내 과거에 대한 아내의 기억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니까요. 아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죽은 뒤에도 당신에게만 털어놓은 나의 이 모든 비밀을 그저 당신의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 그것이 삶의 유일한 희망인 남자의 고독에 저 역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마 전 끝난 MBC 드라마 몬스터를 떠올렸습니다. 주인공 중에는 도도 그룹의 차남(첩의 자식) 도건우(박기웅 분)가 이 소설처럼 제게 선인과 악인에 대해서 화두를 던져 준 인물이었습니다. 도건우는 전형적인 악인이지만 작품 속의 메인 악역인 변일재(정보석 분)과는 조금 다릅니다. 정보석이 악인이 아닌 악 그 자체를 연기했다면 바탕이 선하지만 환경적으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박기웅이란 배우가 잘 소화했기 때문입니다.
극중에서 아버지 도충 회장(박영규 분)의 정실 부인 황귀자(김보연 분)은 억울한 누명, 박기웅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돈 때문에 접근했다는, 을 씌워 미국으로 모자를 쫓아내고 결국 어머니가 자살하게 만들죠. 도건우는 황귀자는 물론 자신의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아버지도 미워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자신의 목적, 어머니를 죽음으로 이끈 자들에 대한 복수,을 위해서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다 변수가 생깁니다. 그것은 바로 오수연(성유리 분)을 사랑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오수연은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주인공 강기탄(강지환 분)이죠. 연적을 증오하며 도건우는 모든 사람에게는 완벽한 악마처럼 굴지만 오직 오수연에게만 완벽한 선인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오수연의 마음은 요지부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건우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차가운 강물 속에 뛰어들어 익사하기 직전의 자신을 구해내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깡패들의 칼을 맞기도 했던 도건우에게 오수연은 조금씩 마음을 열며 결국 약혼을 하게 되죠.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서 변일재가 오수연을 납치해서 죽이려는 순간 도건우가 나타나 총을 맞고 행복하게 죽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죽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마치 두 도시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죽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그 행복을 누린 점에서 도건우는 지금까지 제가 본 드라마에서 가장 행복한 악역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드라마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비교하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세상에 겉으로 드러난 악인은 없다. 선인도 언제든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마음의 선생님이라면 악한 행동을 하지만 뼈 속까지 악인은 없다, 악인도 누군가에게는 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몬스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강상중 교수는 일본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제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다시 읽어야 할 시간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도 동감합니다. 100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의 마음에 대해 너무나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는 것이겠죠.
“선과 악이 있을지언정 선인과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이제는 우리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을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