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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 다빈치 논술 연구소 김인조 소장님의 기고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김 소장님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대치동에서 중고등학생에게 논술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논술에서 익힌 제시문 독해 요령이 수능 국어는 물론,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이 열쇠
결론적으로 하향식 모형이나 상호 작용 모형의 핵심은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휘나 문법, 구문 학습이라는 미시적 접근만으로도 독해 능력 향상이 이루어지는 학생이라면, 영어 독해와 관련된 배경 지식이나 추론 능력을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학생은 대체로 한국어 독해 능력도 우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하향식 모형이나 상호 작용 모형에 필요한 중요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에 부족한 부분인 어휘나 일부 문법, 구문 등의 학습만으로도 영어 독해 능력 향상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미시적 요소를 갖추는 것만으로 독해 능력 향상에 이르지 못하는 학생은 배경 지식이나 추론 능력이 부족하여 온전한 독해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을 향상하는 별도의 노력이 없다면, 영어 독해 능력의 향상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단순한 사실 파악 이상의 독해를 위해서도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이 필수
그런데 이러한 배경 지식이나 추론 능력의 문제를 독해 모형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지나치게 추상적인 느낌이 들 수 있으며, 독해에 필요한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실제 시험에서 이루어지는 독해 과정의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독해는 글에 주어진 사실적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시험과 연관된 독해는 단순한 사실 파악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시험 분야로서의 독해는 해석의 과정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해석의 과정에는 사실적 해석뿐만 아니라 논리적 해석, 평가적 해석, 추리적 해석, 심지어 창조적 해석까지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비단 수능 외국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수능 언어는 물론이고 논술고사까지 모든 시험에 요구되는 독해 능력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해석을 정확히 파악하고 각각에 요구되는 독해 요소가 무엇인지를 따져보기로 하자.
사실적 해석은 글에 나오는 사실들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해석에는 약간의 배경지식이나 간단한 추론 능력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휘력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파악하였다면 이는 사실적 해석에 이른 것이다. “링컨은 1846년에 국회의원에 선출되었고, 케네디는 1946년에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또, 링컨은 1860년 미국 대통령에 뽑혔고, 케네디는 1960년 미국 대통령에 뽑혔다. 즉, 링컨과 케네디는 100년간의 격차를 두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에 각각 당선되었다.”
논리적 해석은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주장)와 이를 뒷받침하는 논거(근거)를 구분하여 파악하고, 다양한 논거가 있을 경우에는 논거 간의 우선순위나 연관관계까지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는 사실적 해석보다 추론 능력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며, 요구되는 추론 능력의 수준도 더 높다. 앞의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로 더 파악했다면 이는 논리적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필자는 링컨과 케네디가 평행한 삶(parallel life)을 살았음을 주장하려는 함축적 의도가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통령 당선의 연도를 그 근거로 내세웠다. 국회의원 당선 연도 하나만을 놓고 보면 우연으로 볼 수 있지만, 대통령 당선 연도까지 일치하기에 필자는 자신의 주장이 타당한 근거가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평가적 해석은 글쓴이의 논거가 논지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는지 여부까지 따져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는 평가 기준이라는 추가적인 배경 지식이 더 필요하며, 이 기준의 적용과정에 보다 고차적인 추론 능력이 요구된다. 앞의 예에서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파악에 이른 경우이다. “글쓴이가 내세운 논거만으로는 미국의 두 대통령이 다른 시대를 살았음에도 같은 운명의 삶을 살았다고 단정하기가 어렵다(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추리적 해석은 글쓴이의 논거와 논지가 어떤 배경에서 나타났는지, 혹은 논거와 논지로부터 어떠한 추가적인 내용이 도출될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하거나 다른 글과는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 여부 등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내용 스키마라는 배경 지식이 중요하게 부각될 수도 있고, 원인과 결과를 도출하고 비교를 하는 추론 능력이 핵심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앞의 예에서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파악에 도달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링컨과 케네디는 그 이외에도 둘 다 남부 사람에 의해 저격당하였고, 둘 다 후임 대통령이 남부 출신의 존슨(Johnson)이었으며, 링컨의 후임인 Andrew Johnson은 1808년에 태어났고, 케네디 후임인 Lyndon Johnson은 1908년에 태어났다. 또한, 링컨은 죽기 일주일 전 메릴린(Marilyn)의 먼로(Monroe)라는 장소에 있었고, 케네디는 죽기 일주일 전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와 함께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기에 평행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더 있음은 분명하다.”
창조적 해석은 글쓴이의 논거와 논지에 어떤 내용을 더하거나 빼면 어떤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될 수 있는지, 글쓴이의 논거와 논지를 다른 영역이나 분야에 어떤 식으로 적용 가능한지까지 따져 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양한 배경 지식과 함께 심층적이고도 다각적인 추론 능력을 갖출 때 비로소 가능하다. “물론 두 대통령은 태어난 연도와 장소, 형제 관계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기에 평행한 삶이란 주장은 여전히 문제가 있으며, 우연적인 일치를 과장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하는 경우의 발생 역시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지금까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어떤 경우에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평행한 삶’ 가정에 기초한 영화를 만든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독서와 논술은 수능 고득점을 위한 장기적 전략
시험 과목으로서의 수능 언어와 외국어의 구체적인 독해 문제는 물론 더 다양한 형태가 있겠지만, 개념적 차이에만 주목한다면 5가지 해석 방식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따라서 영어 독해에서 이러한 5가지의 해석 방식을 모두 제대로 사용하려면 어휘력과 문법, 구문과 같은 미시적 요소는 물론이고, 배경 지식과 다양한 추론 능력이라는 거시적 요소까지 모두 갖추어야 한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러한 5가지 해석 방식에 능통하기 위한 출발점은 독서이다. 독서는 미시적 요소를 갖추는데도 도움을 주며, 거시적 요소를 갖추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영어 독해 향상을 위해서 영어 원서만 읽으라는 법도 없다.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은 한국어로도 충분히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는 모든 공부의 출발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효율성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독서의 장점은 시간 낭비적 측면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책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만 찾으면 단 몇 문장이면 족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 역시 단 몇 페이지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독서의 위력은 그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온다. 따라서 독서를 한다면서 누군가의 줄거리 요약과 감상으로 만족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시간 낭비이다.
독서 다음으로는 논술 독해 훈련이 중요하다. 논술은 오지선다의 객관식이 아니기에 보다 더 정밀한 독해가 요구된다. 그리고 논술 문제의 각 유형은 5가지 해석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실적 해석과 논리적 해석을 요구하는 요약형 문제, 추리적 해석을 요구하는 비교·설명형 문제, 평가적 해석을 요구하는 평가형 문제, 창조적 해석에서 출발하는 견해형 문제는 모두 제시문 독해 방식과 관련을 맺는다. 특히 독서의 낭비적 속성을 견디기 어려운 예비 고2나 예비 고3은 논술의 독해 훈련을 통해 배경 지식과 추론 능력을 갖추는 게 효과적이다. (물론, 거시적인 접근만으로 영어 독해 능력이 저절로 향상되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자.)
지공신공 입시연구소 소장, 수시의 진실 저자, sailorss@naver.com
[신진상의 고등 공부 이야기] 영어 독해, 이젠 숲을 보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