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다빈치 논술 연구소 김인조 소장님의 기고로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김 소장님은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대치동에서 중고등학생에게 논술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논술에서 익힌 제시문 독해 요령이 수능 국어는 물론,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때로는 숲을 보는 거시적 접근이 필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라는 말이 있다. 경제 문제나 사회 문제, 심지어 개인의 일상적인 문제까지도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당면한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그 문제와 연관된 보다 큰 단위나 범위의 문제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미시적 접근뿐만 아니라 거시적 접근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어 독해 능력의 향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어휘 실력을 높이고, 문법이나 구문을 익히는 등의 노력은 독해 능력 향상을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열심히 했음에도 충분한 실력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휘나 문법, 구문 등은 영어 독해와 관련된 직접적인 요소이지만, 이것에만 치중하는 것은 미시적인 접근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시적인 접근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면, 보다 거시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서 아픈 치아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아말감이나 레진, 금 등으로 처리를 하면 된다. 하지만, 허리가 아플 때는 문제가 간단치가 않다. 일단은 신경외과나 정형외과 진단을 통해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치료를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만으로 완쾌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허리의 특정 부위가 아픈 것은, 단지 그 부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문제, 예를 들어 자세가 바르지 못하거나, 영양 상태가 부족해서 나타난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점을 중시하는 의학이 바로 동양의학, 특히 한의학이라고 한다. 한의학은 질병을 특정 신체 부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몸 전체의 불균형 문제로 간주한다. 그래서 몸 전체의 균형을 바로 잡는 방법을 가장 중요한 치료법으로 사용한다. 물론 많은 질병은 문제가 있는 특정 부위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만으로도 완쾌된다(충치의 경우처럼). 하지만, 그러한 치료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허리 통증처럼) 한의학의 기능주의적, 시스템적 접근 방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영어 독해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바로 이와 같은 기능주의적, 시스템적, 거시적 접근의 시도인 것이다.
외국어로서의 영어 독해, 하향식 모형이나 상호작용 모형이 중요
그렇다면, 영어 독해와 관련된 거시적 접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영어 독해와 관련된 두 가지 모형을 우선 살펴보기로 하자. 학자들은 영어 독해를 상향식 모형으로 보거나 하향식 모형으로 이해한다고 한다. 상향식 모형은 독해자가 ‘글자 → 단어 → 구 → 문장 → 문단 → 글’ 등의 순으로 의미를 점진적으로 파악하면서 글의 최종적인 독해에 도달한다고 파악한다. 즉, 독해자가 글의 작은 단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상위 단위의 의미가 파악되면서 마침내 글 전체의 이해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선형적인 과정이 독해라는 것이다.
반면, 하향식 모형은 선형적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상향식 모형과 같지만, 그 방향은 반대이다. 하향식 모형은 독해자의 사전 학습이나 인생 경험 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독해자는 글의 내용에 대한 지식(내용 스키마)과 글의 형식적 구조(수사 구조)에 대한 지식(형식 스키마)을 활용해 글 내용에 대해 추론을 하는데, 이때 독해자의 배경 지식과 글 정보가 상호 작용을 하면서 독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독해자의 배경 지식으로부터 출발해 글의 세부적인 내용 파악으로 하향 이동하는 과정이 독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을 종합한 상호 작용 모형도 있다고 한다. 이 모형은 하향식 모형을 세련화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독해자와 글의 상호 작용 과정을 더 체계적으로 이론화하였다. 하향식 모형과 마찬가지로 독해자의 배경 지식을 강조하지만 독해 과정은 단순한 선형적 과정이 아니라 복잡한 순환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글의 정보와 독해자의 배경 지식이 똑같이 독해에 영향을 준다. 독해자는 글의 내용을 추론하기 위해 자신의 배경 지식을 활용하면서도 이러한 배경 지식 활용의 타당성 확인을 위해 상향식 모형처럼 글 정보에 대한 점진적인 파악에 의존한다. 이 두 과정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며, 독해자는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최종적인 독해에 이른다.
결국, 독해에 있어서 미시적 접근은 상향식 모형을 중시하는 것으로, 거시적 접근은 하향식 모형이나 상호 작용 모형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제2모국어나 외국어로 배우는 경우에는 거시적 접근이 더욱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작은 단위인 단어의 정확한 의미 파악만으로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만큼, 상위 단위인 구나 문장의 의미 파악에 이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고가 이어집니다.
지공신공 입시연구소 소장, 수시의 진실 저자, sailorss@naver.com
[신진상의 고등 공부 이야기] 영어 독해, 이젠 숲을 보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