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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지난 해와 달리 1월 중순 현재 서울대와 서울시립대 건국대를 제외한 주요대 어느 곳에서도 입시 요강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른 학부모들의 혼란은 커져만가는데요, 결국 ‘혹시나’ 하던 우려가 ‘역시나’로 바뀌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0일 목요일 주요대 입학처장들이 공동으로 의견서를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외대 이대 등 서울의 주요 사립대 입학처장이 모두 참여해 2014 선택형 수능의 실시 유보를 교과부에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입학처장들은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2014학년도에 실시하려는 선택형 수능은 수험생, 교사, 대학 당국에 상당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학생이 교육 실험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선택형 수능 실시를 유보하고 향후 수험생, 교사, 학부모, 대학의 의견을 수렴해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서 교과부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사실 어떤 제도든지 첫 해에는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기존의 제도를 유지했을 경우 발생할 문제점이 고쳤을 때의 문제점보다 더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수능의 문제점은 환자로 치면 말기암 환자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합니다. 전국 단위 시험 성적으로 줄 세워 학생들을 뽑는 나라는 현재 대한민국 외에는 없습니다. 적성도 필요 없고 오직 단 하루의 시험 성적 하나로 대학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은 정말 구시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능 시험을 공교육 사교육을 통해서 준비하고 그것도 모잘라 1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수능을 위해 재수 혹은 N수를 하는 나라도 우리밖에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정시의 문이 줄어들고 EBS에서 수능을 쉽게 출제한다고 해도 고등 사교육의 80% 이상은 수능 관련 사교육입니다. 초등 중등에서 주로 수학 과목 위주로 선행학습을 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수능에서 가장 중요한 수학 과목을 미리 공부하자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에 MB 정부는 수능의 비중을 계속 줄이려 했던 것이고 그 전인 참여 정부 역시 수능을 등급제로 전환하는 등 수능의 비중을 계속 줄이려 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사교육 시장의 파이도 줄면서 공교육도 어느 정도 정상화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새 정부 역시 그 기조를 이어 받아 쉬운 수능과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변별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입시 정책을 입안할 게 확실합니다. 박근혜 당선자는 예전에도 대입 수시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완화하든지 폐지해 달라고 주문한 적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물론 대학의 우려가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선택형 수능이 제대로 학교에서 대비가 되려면 결국 고등학교에서 A형과 B형으로 나눠 수업을 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우열반을 도입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죠. 우수 학생들이 몰린 특목고나 자사고 외에 대부분의 일반고는 그것이 불가능할 겁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수능 대비가 어렵다고 판단한 학생들은 학원으로 달려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타당한 우려는 선택과목의 편중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의 경우 6월까지는 대부분의 학생들의 B형을 공부하다가 6월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후 인서울이 어렵다고 판단한 상당수 하위권 학생들이 A형으로 갈아탈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위권 학생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영어 B에서 1등급을 받는 것은 평소 모의고사 4%가 아니라 1% 안에 들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6월 이후에 A형과 B형 중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놓고 중위권 학생들이 컨설팅 시장에 쇄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과부의 대응 논리는 바로 선택형 수능의 장점인 학생의 선택권 보장과 입시 부담 완화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문이과 모두 수학과 탐구는 달라지는 게 없고 결국 국어와 영어 과목에서 문과와 이과 예체능 학생들이 다른 시험을 본다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이과생들이 국어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고 반대로 문과생들은 국어에 대한 부담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영어에 대한 부담은 하위권과 상위권 용으로 시험이 분리되면서 문과와 이과 학생들 모두 늘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수능에 대한 부담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명분은 충분하지만 대학들이 지난 해까지는 잠잠코 있다가 이제 와서 이를 이슈화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일까요? 이런 문제점들 때문에 3년 전에 예고했던 선택형 수능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야 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다음과 같은 대안을 마련하면 올해부터 시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안은 대학이 정부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대학 스스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선 수시에서 대학들은 수능을 변별력 있는 평가 요소로 활용하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수시는 학생부와 논술 정시는 수능으로 단순화하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상위권 대학들은 지금처럼 높은 우선 선발 자격을 폐지하고 수능 최저 등급도 훨씬 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과생들에게는 영어 B가 아닌 영어 A형을 치르도록 해야 합니다. 대신 이과생들에게는 모든 대학들이 수학 B형을 택하도록 해서 이과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에 집중하고 문과 학생들은 국어와 영어 사회 공부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에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대학들이 수시에서 수능 최저 등급 대신 내신의 변별력을 높이고 문과 학생이 과학 과목을 선택해서 얻은 성취도와 이과 학생이 사회 과목을 선택해서 얻은 성취도에 더 높은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처럼 문과와 이과 성향을 고루 갖춘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는 트랙을 늘리는 게 필요합니다.
12월 10일 주요대학들이 발표한 수능 최저 등급 기준을 보면 대학들은 수시에서도 여전히 수능 점수 높은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 듯 합니다. 수능에 대한 일방적 편애를 대학들이 거두고 수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내신과 학생부 비교과 중 독서활동이나 동아리 활동 등 학업 관련 비교과 활동의 변별력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신진상 (신우성 입시컨설팅 소장)/ '수시의 진실' 저자 www.shinwoosung.com
[신진상의 고등 공부 이야기] 대학은 왜 이제 와서 선택형 수능을 반대하는가?
신진상 신우성 입시컨설팅 소장의 2014 입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