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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12일 끝난 수능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정부는 6월과 9월 모의고사에 이어 올 수능도 지난 해 수능처럼 쉽게 출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입시기관은 물론 학교 학부모 수험생까지 누구나 쉬운 물수능을 예상했는데 두껑을 열어보니 물수능이 아니라 펄펄 끓는 수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는 반응입니다.
쉬운 수능은 사교육 억제, 공교육 강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현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강조해 온 핵심 교육 정책인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정부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한 걸까요? 아니면 교육 정책의 기조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도 저도 아니라면 교육부와 평가원이 엇박자를 냈다고 봐야 할까요?
물론 정부가 쉽게 낸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이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은 되도록 지키는 게 좋지만 쉽게 낸다는 약속을 어기고 어렵게 냈다고 해서 정부가 받을 것은 비난 정도일 겁니다. 쉬운 수능은 재수생 양산과 정시 지원 전략의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수능을 어렵게 내면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렵게 낼 생각이면서 그것을 감추고 공개적으로 쉬운 수능을 호언장담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불수능은 대형 입시 업체들과 대형 입시 업체들의 공포 마케팅에 좌지우지되는 학부모들에게 수능이 다시 어려워지니 일찍부터 수능 준비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시그널을 주면서 겨울방학부터 학부모들을 다시 학원가 과외로 내몰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고3이 뛰면 고 2 고 1에 중학생 학부모들까지 움직이는데 정부가 정말 그것을 원했을까요?
저는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교육부와 평가원의 엇박자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부와 교육부는 쉬운 수능, 물수능을 기대했지만 문제를 출제하는 평가원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어려운 수능이라는 정면돌파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사 국정 교과서 문제에 교육부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관계로 감독기관인 교육부가 수능의 난이도와 관련해서 평가원을 콘트롤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김영수 평가원 원장이 올해 임기를 시작한 신임이기 때문에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첫 번째 수능을 치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능 출제 위원장을 포함해서 출제 교수진들은 문제를 출제할 때 여당의 정치적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작년도 수능과 비교해서, 작년 수능이 너무 평이했으니까 변별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난이도를 높이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고 끝까지 이를 관철시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게 진실이라면 정부는 물수능의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고 김영수 평가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조직을 장악해 내년도 수능부터는 확실하게 물수능으로 가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차피 2017 수능에서는 상대평가 영어의 마지막 해로 영어가 어렵게 나올 경우, 영어 때문에 수능을 망친 많은 학생들이 절대 평가(절대 평가라는 동전을 뒤집으면 그 뒷면에는 쉬운 난이도가 있습니다. 즉 절대 평가는 반드시 쉬운 난이도를 전제할 때 가능한 표현입니다.) 영어에 희망을 걸고 재수를 선택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물수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와 한국사만큼은 아주 쉽게 출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즉 쉬운 수능을 예고했다면 쉽게 내는 거죠, 그러면서 시험은 시험으로서 최소한의 변별력을 유지하는 길일 터인데, 사실 이 두 가지 과제는 동시에 이루기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취임 첫 해인 김영수 평가원원장이 이번 수능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셨을 겁니다. 내년에는 신뢰 받는 정부와 신뢰받는 시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그 분이 동시에 잡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12일 끝난 수능 난이도에 관한 뒷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