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식 영어 발음이 멋있다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09.30 09:39
  • “OO영어 선생님 진짜 별로이에요. 영어 발음도 이상해요.” 한 학생이 와서 이야기를 이렇게 꺼냈다. 그리고 그날 필자에게 잔소리를 한 시간 내내 들었던 것 같다. 잔소리의 내용은 발음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너보다 영어 훨씬 잘하시니 겸손하게 배우라는 말과 함께. 참 신기하다. 많은 사람들이 발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잠시 생활할 때의 일이다. 당시 영어가 부족해서 미국인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았었다. 일대일로 만나 영어로 된 에세이를 쓰고 교정도 받고, 대화도 나누며 영어 실력이 짧은 시간에 많이 늘었었다. 그리고 매 시간마다 놓치지 않고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녹음하기였다. 일단 에세이를 써서 첨삭을 받고, 그 내용을 집에 와서 녹음기에 담았다. 그리고 돌려 들으며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다시 체크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다시 그 미국인 선생님이 녹음 파일을 들어보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지도를 받다 보니, 점차 영어 실력이 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날 정도로 혀가 아플 정도로 지속적인 발음 교정은 나름의 자신감도 심어주었다.

    그러나 필자의 남편은 발음을 교정 받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미 미국의 명문 대학교의 유학생으로 토플 성적도 좋았던 남편의 영어는 정말 토종 한국인의 발음 그 자체였다. 어찌 보면 사투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떤 한국인들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편안한 영어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철학이 있었다. “한국인이면 한국인답게 발음하는 게 멋있다.”라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처음엔 의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어차피 아무리 교정을 열심히 받아도 필자의 영어나 남편의 영어나 미국인들에게는 그냥 외국인이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영어가 국제어로 통용되고 있다 보니, ‘정확한 발음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체로는 의사소통만이 주목적이다.따라서 발음을 누가 더 잘 하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냥 다 자신의 색깔대로 말을 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발음보다 어휘였다. 세련된 표현이나 정확한 문장을 만들어 구사하는 것이 훨씬 더 지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발음이 정말 미국인 같아도 적절한 어휘를 사용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발음은 아직 교육을 받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더 좋을 수 있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그냥 살기만 해도 좋을 수 있다. 이미 한국인인 우리는 미국인들만큼 혀를 현란하게 꼬아가며 발음을 할 이유 따위는 없다.

    한번은 미국 유명 대학에서 외국의 명교수가 초청되어 강연이 있었다. 이 교수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알아듣기 정말 힘들었다. 자신의 나라 말 억양대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발음이 나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더 집중해서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미국의 학생들이 더 귀를 기울이고, 하나라도 이해하려 하는 모습에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국식으로 발음해도 정확하게 구사하는 말은 정말 멋있다. 우리 나라의 색을 담는다는 것도 의미 있어 보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영어가 멋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식의 발음을 최대한 더 살려서 연설을 자주 해주시길 바란다. 한국식 발음이 이런 거라고 전세계인들이 이해하도록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발음 따위는 잊고, 정확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더 멋지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식 영어 발음은 이미 꽤 멋있다. 이제 발음에 투자할 시간에 어휘 공부에 좀더 힘쓰면 된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