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재미없는 공부는 하기 힘들다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09.01 18:01
  • 어려서 피아노를 배울 때의 일이다. 필자의 또래들 대부분은 어렸을 때 피아노를 한 번쯤은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정말 피아노 학원도 많았다. 그리고 놀이마냥 ‘젓가락 행진곡’ 한 곡 정도는 친구들끼리 같이 앉아 치며 즐거워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 피아노라는 게 생각보다 참 어렵다. 악보를 보면서 음을 이해하고, 손으로 옮겨서 치는 과정이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손은 제멋대로 움직이니 말이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 중에는 왜 그렇게 잘 치는 친구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들보다 좀 늦게 시작한 나는 이제 막 치는 단계인, 친구들과 비교하니 너무 창피하기만 했다. 학교 오르간을 함께 치며 놀게 되면, 앞에 함부로 나서기도 싫었다. 잘 치는 애 앞에서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뒤로 뺀다.

    그래서인지 ‘바이엘’과 ‘하농’을 그렇게도 치기 싫어했다. 이 둘은 기초 교재 중에 하나였는데, 음도 심심하고 재미도 없다. 다른 친구들처럼 멋들어지게 곡 하나 완벽하게 쳐보고 싶은데,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음악을 치려니 지겹고 피아노가 싫어지더라. 연습을 해와야만 하는데, 하도 안 해오니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눈높이는 이미 나의 실력보다 저 높이 있는데, 실력이 따라주지 않으니 점점 피아노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학원을 빠지는 날이 늘어났다. 그러자 하루는 선생님께서 교재를 바꿔보자고 하셨다. 연습만 하는 교재에서 벗어나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악보로 옮겨놓은 한 곡짜리 얇은 종이였다. 정식 명칭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는 ‘피스’라고 불렀다.

    이 악보는 참 재미있었다. 이미 많이 들어본 음악이었기 때문에 연습을 조금만 하면 주변에서 많이 듣던 그런 음악을 내가 멋들어지게 치는 것만 같았다. 신이 나기 시작했다.  매일 피아노를 배우러 가면서 내 실력이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연습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빨리 이 작품을 완벽하게 내 스스로 쳐보고 싶어졌다. 점점 완성이 가까워지던 어느 날, 드디어 그 한 곡을 완벽히 치게 되었다. 뿌듯했다. 내가 드디어 이 음악을 다 치게 되다니. 피아노를 잘 치는 것만 같았다. 자신감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내 피아노 곡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피아노에 재미를 붙이며 1년 넘게 배우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공부도 그렇다. 피아노를 칠 때, 기초가 중요하지만 기초만 하다 보면 너무 하기 싫은 것처럼, 공부도 개념만 공부하고 다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진도가 안 나간다면 그렇게나 하기가 싫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공부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바로, 공부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는 성취감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문제집 한 권이든, 한 과목이든 뭐든 성과가 눈에 띄어야 하는데 무조건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보고, 또 보고만 반복하라고 해보자. 질린다. 얼마 전 만난 한 학생은 수학을 정말 싫어했다. 그 이유를 보니, 지금까지 제대로 마친 문제집이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리고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책을 낑낑대며 보고 있더라. 이 어려움을 이겨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버티고 참다가 그 과목을 아예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재미가 있고 진도가 나가고 무언가 성과가 있어야만 한다. 공부를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공부와 멀어지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공부는 재미있어야만 한다. 스스로 끈기를 가지고 인내하게 하면서 그 이후의 보상에 대한 즐거움을 알기도 전부터 강제적으로 버티게 하는 것은 좋은 공부방법이 아니다. 우선 얇고 쉬운 책부터 아이가 금방 풀어내게 해보자. 다음은 그것보다 좀 더 두껍고 어렵게 단계를 높이자. 어느새 쌓여있는 책장의 책들을 보며 공부의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서 풀리는 문제는 공부의 재미를 불어넣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가장 빠른 길은 공부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