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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 상전 모신다.” 낯선 이야기가 아닐 것 같다. 수능 시험을 앞둔 아이들은 지금 난생처음 가장 예민하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부모들도 살얼음판을 건너듯 조심스럽기만 하다. 혹여 우리 아이 아플세라, 공부하다가 지칠세라 걱정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다. 그런데 우리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같지 않다. 이해하고 감싸고 싶은데, 참다가도 어느 날 욱하는 심정으로 나도 모르게 쏟아내게 된다. “너만 고3이니? 그럴 거면 공부 때려치워!” 그 동안 짜증내는 아이를 보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날 선 독설들을 누르고 누르다 결국 폭발하고 만다.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을 쏟아내고 나니 아이들은 또 그 핑계로 공부를 더 안 한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주세요.” 아이들의 외침이다.
가끔은 필자도 고3 학생들의 신경질이 거슬릴 때가 있다. 부모나 주변인들이 어디까지 이해를 해줘야 할까라는 의문과 함께 얄미운 감정도 올라온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부모님과 공감하며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하나다. “어쩔 수 없다.”
실제 사례들 중에 이 시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부모들의 화가 아이들의 공부를 망치게 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다. 아이의 온갖 짜증을 다 받아주던 부모님도 거의 일년 가까이 수험생과 함께 ‘수험생 부모’ 생활을 해오지 않았나. 특히 엄마들은 생생하게 그 고생을 다 떠안는다. 그래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편하고, 내 화를 다 받아줄 만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엄마도 처음엔 이해하고 받아주지만, 이게 관성이라는 법칙이 작용하나 보다. 짜증의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엄마가 참는 것이 당연해지면서 엄마도 지친다. 혼자만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게 벼슬도 아닌데,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자기만 다 겪는 것처럼 힘들어 하는 우리 아이가 도통 이해가 안 된다. 이걸 계속 참아야만 할까?
당연히 참아야만 한다.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 아이를 뒤흔들어봐야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모두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만 그러는 건 아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상전 노릇하면서 집에서 화내고 짜증낸다. 직접 경험했던 기억을 떠올려, 아이를 이해해보자. 아이들은 처음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물론 이 뒤에는 더 큰 압박과 힘든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 어른으로 우리가 겪어온 더 힘든 사회인의 길을 아이가 걸어갈 걸 생각해보자. 그건 훨씬 더 안쓰럽다. 조금은 적응하고 감정을 풀어낼 시간은 줘야만 한다.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서도 보아왔겠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부모들과 사이가 좋다. 화내봤자, 며칠 공부 날리는 부작용밖에 얻을 것이 없다. 아이가 짜증을 내도 일단은 참자. 참은 김에 좀 더 참자. 얼마 안 남았다. 도 닦는 심정으로 성경에서 말하듯 “이것까지 참으라.” 이 말을 하고 싶다. 단, 수능 이후에는 참지 말자. 아이도 반성하고, 부모도 만세를 외치는 평온한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
[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고3 상전을 모시는 부모님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