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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오래 한 학생들이 가끔 의외로 좋지 않은 성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물어보면 곧잘 대답도 잘 하고, 질문의 질도 우수한 상태였는데, 정작 점수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불운이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이런 케이스 중에 시험 운이 지독하게 없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익숙한 환경에서 보는 시험은 잘 보지만, 막상 시험장에만 들어서면 잘 읽히던 글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계산실수도 연발하는 등 제 실력이 발휘되지 않아, 징크스나 운이 없다는 결론으로 도달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운 이외에도 또 다른 변수가 있기는 하다. 필자는 이를 ‘익숙함’과 ‘알고 있음’의 차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머리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같은 문제 유형과 책을 지속적으로 보아온 경험을 갖고 있는 친구들 중에는 익숙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나온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정의를 명료하게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가, 특징이나 속성들을 거듭 언급해서 설명하는가를 등을 보면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닌 경우는 정의가 아닌 속성만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긴 설명이 아니라, 핵심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이 개념을 한번 설명해보렴.”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능력, ‘메타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런 내용과 같다.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는데,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실력으로 이어지는데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은 시간만 오래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개념이 명확한지, 아닌 지에 대해 확인하고 정의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같은 수업을 여러 번 들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고, 같은 책을 여러 번 보았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해서 그 안에서 자꾸 아는 것을 늘려가야만 한다. 그러려면 익숙한 것을 혹시 안다고 생각하는 지 끊임없는 의심해보라.
이번 수능을 통해서도 또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같은 책을 붙들고 투자를 한다고 해서,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더 짧은 시간을 투자했더라도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 상대적으로 장시간 투자하며, 안다는 착각을 하던 경우에는 기대치보다는 좋지 않은 결과들을 가져왔다. 안타까움이 많았지만, 공부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당연히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가 시험을 잘 보기는 쉽지 않다. 그 반대로 잘하는 친구가 못 보게 되는 경우는 있을지언정. 결론은,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한번 다 되짚어 보자. 아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
[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의 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