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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집을 사주지 말라니, 대체 우리 아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인가? 다소 어이없어 보일 수 있는 제목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 그대로이다.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사주지 말자. 아예 사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다 마치기 전에는 절대 문제집을 쌓아두게 이것저것 사주지 말라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이다. 그리고 문제집이나 책이나 자료 모두 다 홍수이다. 우리 아이들은 갈피를 못 잡는다. 뭘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하게 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넘치는 교재들이다. 잘 하는 아이는 벌써 A 문제집, B 문제집, C 문제집까지 다 마쳤단다. 당연 잘하는 애처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될 것 같다. 그리고 풀다 보니, 좋은 교재, 나쁜 교재도 나눌 수 있다. 이거는 구성이 어떻고, 저거는 설명이 어떻고. 전문가 뺨을 친다.
학교, 학원에 내가 스스로 하는 교재까지 합치면 교재들은 은근슬쩍 쌓이기 시작한다. 수학만 해도 개념서, 유형서, 실전 문제 풀이집에 모의고사까지 두둑하다. 그럼 우리 아이들은 저렇게나 많은 것 중에 과연 무엇으로 공부를 하고 있을까?
막상 교재를 열어보면 꽤나 깨끗하다. 솔직히 다하지 못한 채, 새 책도 아니고, 헌 책도 아닌 책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태이면 정말 아이들이 펼쳐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새 책에 대한 두근거림도 없고, 내가 다 봐서 손때 묻은 내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들 공부 상태도 그것과 유사하다.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다.
과거 부모 세대에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 수학 책 한 권을 풀고 또 풀고, 고민하고 또 풀었다. 그러다 보니 내 책이 되고, 손에 익고, 눈에 익었다. 닳고 닳은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펼쳐볼 때마다 가슴 뿌듯하다. ‘그래도 내가 다 이 책을 공부했구나!’ 우리 아이들은 과연 자신 있게 뿌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을까?
과유불급이다. 너무 넘치다 보니, 적당히 대충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고 다음, 또 그 다음을 찾게 된다. 진정한 공부란 내가 이 책 한 권에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책만 많다고 지식의 양이 느는 것은 아니다. 부실 공사와 다를 바 없지 않겠나. “엄마 돈 줘. 문제집 사게.” 이러면 반드시 물어보자. 전에 책을 다 했는지. 다했다고 하면 또 물어보자. “그 문제집에서 모르는 것이 정말 없다고 할 수 있겠니?” 대답하지 못한다면, 사주지 말자. 일단 그거부터 다 끝내고 그 다음 교재로 넘어가도록 해야 한다. 쓸데없이 교재비에 너무 많은 돈을 쓰지 않도록 하자. 그 교재가 머리 속으로 들어갈지, 재활용 분리수거 통에 들어갈지는 똑똑한 부모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전 진학사 입시분석 위원, 객원 입시 상담 / SZ 공부법 연구소 원장
[윤의정의 우리 공부합시다] 문제집을 사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