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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원년인 2009학년도 합격생 대부분은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입시를 치렀습니다. 입학사정관제만을 위해서 준비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한 합격생은 어떤 전형으로 합격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내신-수능-논술을 모두 준비하면서 입학사정관제까지 챙겨야 했다고 하는군요. 어찌 보면 2009년도 합격생들이야말로 사교육이나 엄마의 치맛 바람의 덕을 가장 덜 본 100% 순도의 입학사정관 전형의 아이디얼(이상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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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생 가운데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은 아마 신예은 학생(사진)일 겁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인터뷰를 했고 시대교육에서 출간된 ‘Live 입학사정관 전형’의 대표저자이기도 합니다.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 리더십 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예은 양은 성대 외에도 동국대, 명지대, 이화여대까지 지원한 대부분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정도면 그녀에게서 ‘우리나라 입학사정관제의 미래를 보았다’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스펙 때문에 붙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렇지만 그녀는 남과는 다른 어떤 스펙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녀의 스펙 중에서 남들과 다른 큰 차별 포인트는 출간 경험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교환 학생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예은이는 10대에 새로운 미래를 보았다’(꿈과 희망)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단행본을 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의 책은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전문성과 필력을 인정받아 합격의 영광을 안은 것이지요. 그녀는 수능 준비로 바쁜 고 3 때도 폴란드에서 짧은 해외 체류 경험이 있습니다. 다녀 오고 쓴 보고서가 100페이지가 넘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필력과 전문성 못지않게 성실성도 인정받았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기주도학습능력과 문제해결능력도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과정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이 처리해냈기 때문입니다. 기획, 제안부터 계약까지 두 권의 책 모두 자신이 출판사들과 일일이 접촉해 출간을 이루어냈거든요. 특히 입학사정관제 책에 실린 각 대학 입학사정관 인터뷰와 기고는 모두 그녀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 거두어 낸 성과였습니다. 하나의 업적으로 여러 가지를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교훈을 그로부터 얻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리더십도 인정받았습니다. 미국 교환 학생을 마치고 복학한 고등학교에선 학생회 부회장도 맡았습니다. 학교를 위해 일하랴 열심히 자신의 꿈을 살리기 위해 경험을 쌓느라 사실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겁니다. 강북의 일반고에서 내신이 3등급 내외였던 예은 학생은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없었다면 세칭 명문대에 합격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성균관대 사회과학부라면 수시 학생부 전형 합격자들 대부분이 내신 1등급 초반이라고 합니다. 성적에서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을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는 고려하는 듯 합니다. 그녀의 다양한 활동과 초등학교 때 영어 학원(실제로는 어머니가 운영했습니다) 외에는 사교육의 도움을 거의 받은 적이 없는 점이 내신 성적에서 다른 학생들에 비해 부족한 점을 만회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겁니다.
책과 리더십, 성실성 다음으로 눈여겨 볼 것은 영어 실력입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을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영어가 됩니다. 토익 점수가 800점대 후반으로 우수한 편이지만 토익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은 텝스 시험의 900점대 초중반 학생들이 성대나 연고대 수시 전형에 합격하는 것으로 보아 영어 점수 그 자체가 경쟁력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점수보다 중요한 게 면접에서 유창성(fluency)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어려운 질문에도 웃음과 함께 ‘음’(umm), ‘카인드 오브’(kind of) 등의 추임새를 넣으면서 자연스럽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낙천적이고 붙임성 있는 성격도 틀림없이 경쟁력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녀가 지닌 개인적 매력은 그 어떤 스펙보다도 면접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겁니다.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입학사정관제를 어떻게 준비해야 좋은지에 관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입니다.
Q : 늦었지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한국적 교육 현실에서 본인의 입학사정관제 합격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학부모들은 자녀가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만을 신경 쓰지요. 자녀들의 행복은 뒷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구나, 행복한 삶을 살면서도 원하는 학교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저는 제 꿈,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살았고 그 과정에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것은 부수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Q : 입학사정관제에선 성적과 등수가 아닌 다른 요인이 합격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 사교육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어요. 면접만 하더라도 비싼 고액 면접을 받을 수 없었기에 엄마와 함께 모의면접을 철저하게 했지요. 초등학교 때에도 학원에 거의 다니지 않고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특기적성 교실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배웠지요. 엄마는 학교공부보다 내가 흥미 있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공부보다는 통합적인 전인교육과 인성계발에 더욱 관심을 가지셨죠. 아빠는 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신문을 일일이 스크랩하시면서 세상에 대한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Q : 초등학교 엄마들은 자녀 교육 그 중에서도 독서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은 학생은 초등학생 때 어떤 책들을 주로 읽었나요?
A : 저는 소위 말하는 책벌레는 아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흥미로운 것만 골라 읽었지요. 이야기 하늘나라라는 동화책 성경을 열심히 읽었어요. 아빠가 개척교회 목사님이셨거든요. 과학 앨범 시리즈 물도 열심히 읽었는데 동물의 세계에 무척 관심이 많았어요. 커가면서 관심의 분야가 늘어났고 덩달아 책의 주제들도 다양해졌지요. 신문 같은 무거운 주제는 싫어했지만 아빠가 책 한 권 당 500원씩이라는 당근을 저에게 제시하셨고 저는 아빠가 정한 도서 리스트를 열심히 읽었어요.
일종의 용돈벌이였죠. 책을 통해서 저는 ‘개성’이라는 컨셉을 머리에서 확실히 잡았던 듯 싶어요. 커가면서 관심의 촉수가 뻗히는 대로 읽었기 때문인지 저는 어떤 책이든지 편견이 없어요. 솔직히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 같은 가벼우면서도 자유분방한 책을 좋아합니다. 저의 글도 개성이 톡톡 튄다는 평을 받는데 그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Q : 예은 학생 글은 참 재미있어요. 필력이 정말 좋은데 초등학생 때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듯해서요.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A : 독서보다 더 좋은 게 글쓰기였어요.7 살 때는 그림 동화와 스토리를 연결시킨 창작 동화를 스케치 북에다 만들기도 했지요. 엄마 말로는 유치원 때 한글을 깨치고 나서 다른 아이들 글의 맞춤법, 예를 들면 ‘읍니다’를 ‘습니다’로 고치는 등 교정을 보았다고 하네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는 꾸준히 썼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썼어요. 학기 끝날 때 담임선생님이 문집을 만들어주셨지요. 아빠 영향이 컸는데 아버지가 설교하실 때 받아서 정리하도록 시키셨어요. 성경 말씀이 비유가 많잖아요. 저는 그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길렀던 것 같아요.
Q : 입학사정관제에서는 자기소개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예은 학생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A : 자기소개서를 쓰는 건 엄청난 작업이었어요. 내가 쓴 글을 엄마가 보면서 계속 고쳐나갔지요. 저는 솔직하게 잘한 것도 쓰고 부족한 것도 쓰려고 했어요. 실수를 했으면 그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도 분명히 썼지요. 내가 왜 꼭 이 학과에 들어가야 하는지, 나의 관심사와 적성, 장래 희망이 얼마나 이 전공과 어울리는지를 드러내려고 노력했지요.
Q : 가정 문화, 토론 문화, 부모와 자녀의 친밀도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나요. 예은 학생 경우를 봐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든 가정 문화가 입학사정관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 : 엄마 아빠 모두의 도움이 컸어요. 아빠는 당신이 읽으신 책에 대해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면서 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저에게 전해 주셨죠. 고 3 때는 아빠가 경제신문을 구독하시면서 저에게 신문에서 읽을 건 질문 형태로 물어 보시는 방법으로 상식을 키워주셨죠. 학교에서 있었던 일 가지고 많은 토론을 했어요. 저희 집 식구들은 원래 말이 많은데 밥 먹을 때 음식이 식을 정도로 수다를 떤답니다. 이런 것들이 특히 면접에 많이 도움이 됐어요.
Q : 입학사정관제에서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면접의 중요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경험을 들려주세요.
A : 성대의 경우 15분 동안 교과면접을 하고 5분 동안 입학사정관제 면접을 했는데 특히 입학사정관제 면접이 떨렸어요. 교수님들은 긴장을 풀어주시려고 노력을 했는데 입학사정관님들은 눈부터 달랐지요. 진실을 알고 있다. 뭔가를 반드시 캐내겠다 이런 분위기가 느껴진 거 있죠? 입학사정관 면접은 제가 지금까지 치른 면접 중에서 가장 심리적 압박이 컸답니다. 자기소개서에 기술한 내용은 반드시 외워 가고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모의 문제를 만들어서 면접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예은 학생은 입학사정관제에 합격한 학생들과 함께 책을 내기도 했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자주 만나기도 하는데 입학사정관제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떤 편인가요? 조금 남들과 다른 면이 있나요.
A : 개성이 풍부하다는 것과 학생회 활동들을 해서인지 추진력이 남들과 달랐어요. 어떤 일을 할 때는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는 나름의 매뉴얼이 있는 듯합니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서 제안하면 “나도 할래”, “나도 하고 싶어”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적극성과 주체성이 입학사정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아요.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도 일반 학생보다 많은 듯하고요.
예은이에게서 나는 입학사정관제의 미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