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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 얘기가 되었다. 작금엔 강산이 변하는 데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몇 달 만에 산 하나를 밀어 없애고, 또 1~2년 사이에 도로가 바뀌어 길을 헤매기 일쑤다.
한데, 그림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10여 년 세월이 걸렸다면 궁금해질 만도 하지 않겠는가? 시인 안도현이 쓰고, 일러스트레이터 이혜리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 “관계”가 그랬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손에 넣고 상당히 기분 좋았던 1996년으로 기억을 되돌려 본다. 당시만 해도, 동화란 아이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어른을 위한 동화가 나온 것이다. 책 동네 밥을 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신선하고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
과연, 연어는 나오자마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뒤이어 나온 “관계”도 내겐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175쪽이나 되는 동화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앞의 책에 비해 어른의 정서가 담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머릿속에 또 다른 그림이 떠올랐다.
어른을 위한 “관계”를 아이를 위한 “관계”로 바꾸는 것이었다. 도토리와 낙엽 간에 오가는 대화로 풀어가는 “관계”의 잔잔한 스토리는 어른보다 아이들 정서에 더 다가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
갈참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도토리 중 한 알이 ‘톡’ 하고 땅에 떨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캄캄하고, 너무 무섭고, 춥기만 한 도토리를 포근히 껴안아 준 것은 다름 아닌 낙엽들이었다. 봄여름 동안 갈참나무 가지에 함께 매달려 있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먼저 땅에 내려와 외로운 도토리를 감싸 안았다.
계속되는 낙엽과 도토리의 대화 속에서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겨울이 지나면서 낙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도토리는 대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라 또 한 그루의 갈참나무 싹을 틔운다.
봄날 숲속에는 이렇게 태어난 수많은 새싹들이 이슬을 머금고 반짝거린다. 산고를 겪은 도토리의 눈엔 어느새 눈물방울이 맺힌다.(그림책 그림 중에서)
나는 얇은 동화책 한 권에서 얻은 개인적인 느낌으로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을 만들려는 결심을 굳혔다. 어린 영혼에게 ‘관계’의 개념을 제대로 심어 주고 싶었다. -
90년대만 해도 이 철학적인 개념을 세련된 그림으로 풀어낼 마땅한 화가가 없다고 생각했다. 도토리와 나뭇잎에 생명력을 넣어 표현했을 때, 조금은 유치한 그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획 비밀 하나를 가슴에 심고 무작정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2005년 4월 일본인 화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동경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였다. 그 화가의 말 한 마디가 내 비밀의 문을 열게 만들었다. “내 친구가 얼마 전에 자살을 했어요. 누군가 그에게 희망을 주었더라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아직 원작자와 아무런 이야기도 오가지 않은 상태에서 내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하나 있다고 말해 버렸다.
그날 밤 관계 전문을 일본어로 번역케 하여 그에게 보내 주었다. “관계”를 읽고 난 일본인 화가는 이 작품에 자신이 꼭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전파를 통해 스케치가 몇 차례 오갔다. 그 사이 안도현 작가와 그림책을 내자는 데 합의를 보았다.
내 마음속에 잠겨 있던 ‘관계’가 일본인 화가의 등장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때 나는 한 가지 계산을 더 하고 있었다. 한국 유명 시인이 쓴 동화에 일본인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면 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일본에서의 번역 출판도 어쩌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곧 후회를 하였다. 아끼고 아끼던 작품을 일본인 손에 맡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스케치가 세 차례 오갔다. 일본인 화가도 나도 그 이미지 표현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일본식 팬시 느낌이 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작가가 포기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화가는 더 이상 스케치를 보내오지 않았다.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 보고도 아무 대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와 정리 작업에 들어가고 말았다. 마음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우리 작가 중에서 그림을 의뢰해도 좋을 두 작가가 떠올랐다. 그중 한 사람이 이혜리 작가였다. 나는 무작정 부산으로 가서 이혜리 작가에게 원고를 주고 왔다.
그리고 두 달쯤 지나 아무 말 없이 다시 부산으로 갔다. 이혜리 작가 작업실에는 아주 넓은 작업대가 있다. 그 넓은 작업대 가득 낙엽과 도토리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혜리 작가는 로트링펜으로 화면을 채워 나갔다. 부스럭거리는 낙엽은 가느다란 펜으로, 산고를 겪는 장면에서는 굵은 선으로 도토리의 그 고통을 잘도 표현했다. 그리고 숨어 있는 작은 도토리 하나하나마다 표정을 잘도 담아냈다.
이 그림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내게 물었다.
“요즘 무슨 책 만들고 있어요?”
“관계요.”
“흐흐흐…… 과안계요오?”(이건 내 육성으로 들려 드려야 하는데…… 아쉽다.)
그것은 ‘관계’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심하게 부정적인 면으로만 부각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관계’의 사전 상 뜻풀이를 보자. 1.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2.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음. 3.남녀 간에 성교(性交)를 맺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관계’라 하면 ‘부적절한 관계’와 등식이 생겨 버렸다. 이것은 매스컴의 역기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 혹자는 제목을 ‘도토리’로 하면 어떻겠냐고도 했다. 나는 책이 조금 덜 팔리더라도 “관계”라는 제목을 단 이 책으로 어린이들에게 ‘관계’란 단어의 개념을 제대로 전해 주고 싶었다.
2006년 11월 그림책 “관계”가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이제 ‘관계’라는 단어가 더 이상 왜곡되어 쓰이지 않을 거라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나는 일본의 한 출판사로부터 “관계”를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계수나무 출판사 대표이사 위정현 제공
[오늘 이 책] 새롭게 태어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