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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한 로마의 건국신화는 테베레 강에 버려졌으나 암컷 늑대가 젖을 먹여 키웠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시조로 한다. 지금도 로마 시의 상징은 이 암컷 늑대상이다. 건국신화를 기초로 볼 때, 전설상의 로마 건국 기원은 기원전 753년 4월 21일이다. 이후 기원전 509년에 의회정치인 로마 공화정이 시작됐다. 기원전 44년에 로마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가 암살 당하고, 기원 전 27년에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년~기원후 14년)라는 이름으로 초대 황제가 되면서 로마제국 시대가 열렸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이후 150년간 로마제국은 평화로운 황금기를 누렸다.
북쪽으로는 브리타니아,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한 로마제국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중동아시아, 러시아 남부까지 정복하면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미 기원전 3세기경부터 그리스와 교류했으며, 공화정 시대인 기원전 275년부터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맹주가 됐다. 기원전 146년에 서양문명의 근원이라 불리는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그리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았다.
기원전 27년에 세워진 로마제국은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됐다. 455년 고트족의 침입을 받은 다음, 동로마제국은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등극하면서 '비잔틴 제국'으로도 불리게 됐다. 비잔틴 제국은 1453년,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게 함락되면서 멸망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정복자인 메메트 2세는 스스로를 '로마 제국의 황제'라 일컬었으나, 세계사에서는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를 콘스탄티누스 11세로 보고 있다.
'로마제국의 역사적 종말은 언제인가'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395년에 동서로마로 분할돼 서로마제국이 쇠퇴하고 비잔틴 제국이 성립된 476년으로 보는 견해와, 로마제국에 뿌리를 두고 로마 황제로 명맥을 유지했던 비잔틴 제국이 완전히 멸망한 1453년으로 보는 견해이다. 실질적으로는 330년에 로마제국 최초의 기독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 306~337년)가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옮기면서 영광스런 로마시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천년의 제국'으로 불리는 로마제국은 전성기 동안 영토 전체에 걸쳐 거대한 정치적, 종교적 기념비나 공공시설물을 세우면서, 세계 곳곳에 로마 문화를 전파했다.
로마 제국의 황제, 귀족과 시민들은 더할 나위없이 풍요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들의 화려한 생활모습은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인 21세기에도 부러움을 살 만하다. 전 세계에 걸친 정복지에서 풍족한 물자가 공급됐기에 로마인들의 의식주 생활은 풍요를 넘어 사치스러웠다. 매일 밤 연회가 베풀어졌고 정복지 노예들의 시중을 받으며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 밤새도록 먹고 마시기 위해 일부러 깃털로 목구멍을 간질여 먹은 음식을 토해냈을 정도이다.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오락과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다. 또 로마인들은 목욕을 즐겨했는데, 공공목욕탕 시설을 지은 것도 로마제국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354년 무렵, 로마에는 952개의 공공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
그 중 가장 유명한 '카라칼라 황제의 목욕탕'은 다양한 온도의 탕 속에서 1600명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대욕탕'이었다. 냉탕, 온탕, 한증탕(사우나), 체력 연마실, 마사지실도 있었던 복합시설로, 미술관, 실내 정원, 도서관, 강의실, 회의실, 오락실, 음식점, 상점 등의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문화생활까지 제공하던 곳이다.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던 로마는 이러한 공공목욕탕 외에도 귀족들의 빌라 정원에 있는 분수와 인공호수, 해상 쇼를 위해 하루 2억 갤런의 물을 사용했다. 이를 위해 로마에서 100㎞나 떨어진 곳으로부터 수로를 건설해 중력에 의한 낙차를 이용해 물을 공급받았다.
기원전 312년에 로마인들은 세계 최초로 수로와 도로를 건설했다. 기원전 25년경 프랑스 님므 지방에 만들어진 '가르의 수도교(Pont du Gard)'는 로마 건축 공학 기술의 경이로움을 대변한다. '가르의 수도교'는 40㎞ 밖에서 물을 끌어 오는 데 중력의 힘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각각의 아치 길이가 25m, 강바닥에 닿아 지지대 역할을 하는 아치는 2톤 무게의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가 49m에 이르는 3개 층의 석조 아치로 구성됐으며, 각 층의 아치는 크기 비례를 다르게 하고 있다. 위층으로 갈수록 작아지는데 실제로 물을 나르는 맨 꼭대기에는 작은 아치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실용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건축물 공사에 있어서도 미학적인 완벽한 건축미를 추구한 로마의 건축적 특징이 돋보인다.
※더 생각해볼 거리
- 세계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룬 로마제국은 능률적인 행정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까지 발전시켰다. 형식 대부분이 그리스 미술에 바탕을 뒀으나, 공공건축·미술, 실용미술, 선전미술 등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예술이 특히 발달했다. 그 원인과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자.
[명화로 보는 논술] 대욕탕·수로·도로… 로마 건축기술이 발달한 배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