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클래스
황희연 영화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9.09 03:06

학교에 다니는 동안 배운 게 하나도 없다고?

  • 프랑스의 로랑 캉테 감독은 노동이나 실업처럼 민감한 사회문제를 주로 다뤄온 감독이다. 그의 대표작이자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인력자원부'는 주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려는 회사와 그에 맞서 싸우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세밀하면서도 건조하게 따라간다. 배우는 모두 아마추어이고, 배경은 오직 집과 공장뿐이다. 배경음악은 한 곡도 흐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문제의 현장에 설치해 놓은 CCTV 화면을 대충 편집한 것 같은 느낌이다.

    제6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클래스'는 로랑 캉테 감독의 이런 영화적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단순하고 건조하지만, 수다가 끊이지 않고, 다양한 생각의 차이가 자유롭게 드러난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긴장을 전혀 늦출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하다. 로랑 캉테 감독이 현미경을 들이댄 공간은 뜻밖에도 치열한 노동 현장이나 이민자 사회가 아니라 '학교'다. 제목에서 시사하듯, 로랑 캉테 감독은 '수업(class)'을 보여주기 위해 러닝타임 전부를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새 학기 첫날 교무실 풍경.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첫 출근의 희망에 들떠 있는 그들에게 정년퇴임을 앞둔 교사가 의미심장한 덕담을 던진다. "한해가 지났을 때, 모두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무신경하게 흘려들었던 이 말은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클래스'는 용기를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노동자' 선생님과, 기계 부속품처럼 획일적으로 끌려가길 거부하는 중학생들의 생각 차이를 전하는 영화다.

    새 학기가 시작된 프랑스 중학교. 흔들리는 카메라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을 두서없이 스케치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프랑스 교실에 앉은 학생들은 인종과 출신이 모두 제각각이다. 중국계 이민자부터 아프리카 이민자, 본토박이 프랑스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생각을 공유하다 보니 토론은 늘 어긋나기 일쑤다. 아이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분노를 표출한다. 4년차 열혈 선생님 마랭은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매 순간 감정을 눌러 담는다. 교실 안 풍경을 바깥에서 바라보면 스릴 넘치는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들이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주제는 크게 보면 '교육'이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클래스'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대개 청춘의 사랑이나 고민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데 반해, 이 영화는 청춘의 판타지를 모두 거둬내고 '교육'이라는 큰 주제 아래 일 년간의 학창시절을 돌아본다.

  • 교육에 관한 첫 번째 질문은 공부의 '효용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 중 쓸모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프랑스어 교사 마랭은 수업 시간에 가정법 미래완료 시제와 직설법 미래완료 시제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자 열심히 문장을 연습하던 아이들이 반발한다. "우리 증조할머니도 이런 문장은 쓰지 않아요. 저는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이런 공부 따위는 하지 않아도 인생을 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푸념이다. 마랭은 설득한다. 실제로 이런 공부가 실생활에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알고 쓰지 않는 것과 몰라서 못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이 영화가 또 하나 중요하게 파고드는 문제는 '처벌'에 관한 것이다. 선생은 학생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어떤 방식으로 지도하고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선생들은 함께 모여 벌점제의 장단점을 토론하고, 말썽꾸러기 슐레이먼을 퇴학시키는 것이 옳은지를 논의한다. 이 모든 것은 학생위원회, 학부모회, 교사회가 함께 모여 '민주적으로' 정하는데, 결국 이들이 도달하는 합의점은 그리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답은 없고, 수많은 의견만 난무할 뿐이다.

    첫 수업을 보여주며 시작됐던 영화는 마지막 수업 시간을 비추며 끝난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올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피타고라스 정리와 플라톤의 철학 같은 것들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다가와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전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에서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단 하나도!"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에도 별다른 확신은 없다.

    이 영화는 여태껏 나온 모든 학교 배경 영화 중에서 가장 진지하게 학교 교육에 대해 고민한다. 학교는 어떤 공간이고, 학생과 교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가. '클래스'는 교육에 대한 총체적 고민에 빠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잃지 마라"는 따뜻한 위로의 말 대신,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지혜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차갑지만 정직한 대답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

    ①학교에서 학생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과 교사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②마랭 교사는 아이들을 훈계하다가 도가 지나친 표현을 사용한다. 그의 행동은 정당한 것일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③마랭 교사는 영화 속에서 토론식 수업을 이끌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토론식 수업의 장단점에 대해 적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