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하고 싶은 것, 할 수 없는 것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철학, 논술에 딴지 걸다' 저자
기사입력 2010.07.22 03:03
  • 최근 학교에 한 졸업생이 다녀갔다. 재학 당시에도 '앞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그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아이뿐 아니라 참으로 많은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 설령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더라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 때문에 늘 불안한 '현재'를 보낸다. 그래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방향이 대충 정리된 어른들의 삶이 행복한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인터넷에 '행복지수'라는 네 글자만 입력해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이다지도 불행한 사람들 속에 살며, 심지어는 불행한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일까.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마치 꿈을 이루는 것인 양 강조한다. 그래서 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고 요구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럴듯한 주문과 함께 말이다. 심지어 꿈이 없는 사람을 매우 불쌍한 사람처럼 취급하곤 한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이 오히려 불행한 내일을 예약하는 일이라면, '꿈을 꾸라'는 강요는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물론 필자가 학생들에게 꿈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하나만으로 자신의 미래를 닫아버리는 선택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논리학에 '선언지 긍정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선언지 긍정의 오류란 '다양한 경우의 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모두 버려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이다. 선택과 관련해 가장 타당한 추리는 '어느 하나를 버리고 나머지 모두를 여전히 가능한 선택지'로 남겨놓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학생들에게 어느 하나를 지정해 놓고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도록 채찍질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자신이 절대로 하기 싫은 것, 해서는 안 되는 것만 고민해보고 나머지는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고(또는 어떤 것이든 돼도 좋다고) 말해주는 것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가다가 실패했을 때, 그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하게 열린 삶 중에 어느 하나를 이룬다면, 적어도 그 삶은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학생들과 상담하다 보면, 참으로 안타깝게도 앞으로의 삶을 단 하나의 모습으로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아이들이 말이다. 학생들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많은 존재이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내일의 모습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로 지금 꿈꾸는 대로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는 누구도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따지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선별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다. 또한 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정리하기보다는 자신 없는 것, 자신의 능력이 모자란 것을 추려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러면 자신에게 열려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 대강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듭해서 거칠 때라야 훨씬 더 다양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학생들에게 꿈을 꾸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현재를 속단하고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오히려 불행하게 만드는 꿈을 지양하라는 뜻이다. 학생들의 꿈은 어느 하나로 닫힌 미래여서는 안 된다. 정말로 희망찬 내일은 좁은 길 끝에 달려 있지 않다.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가능성을 인정할 때라야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을 찾아 이를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이 사회가 머지않은 미래에 불행하지 않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