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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시행될 지방선거에서는 투표를 무려 8번이나 해야 한다. 투표장에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찍는 동그라미 개수를 잘못 세기라도 하는 날이면 귀중한 한 표가 무효처리 될 수도 있다. 물론 동그라미의 숫자에만 관심을 둬서는 안 된다.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고 집행할 사람을 뽑는 것이니 최선의 선택으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8개의 동그라미를 찍되, 선거의 목적에 가장 합당한 사람의 칸에 정확하게 찍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8장의 내용을 뜯어보니 교육과 관련된 것이 2장이요, 정치와 관련된 것이 6장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2개씩 짝을 이루고 있다. 그 짝이란 다름 아닌 단체의 장(長)과 그 장을 견제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의원이다. 선거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단체의 장을 뽑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장의 행정적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해줄 의원도 함께 뽑는 것이다. 결국 선거의 목적에 합당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는 짝을 잘 맞춰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하지만 짝을 잘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를 잘못 알아들어선 곤란하다. 적어도 견제라는 의미를 심사숙고하건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혹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 쉽게 말해서 같은 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단체의 장과 의원으로 짝짓기하는 것은 과히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어떤 후보가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어떤 사람이건, 후보들은 모두 이미 제도적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법적인 피선거권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인 정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구조를 지닐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는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합리적 구조는 상호 견제를 위한 제도가 올바르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급적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단체의 장과 의원을 짝짓기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야 말뜻 그대로 서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공동체의 방향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이미 지시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의 최우선은 국민의 권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부당한 침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을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를 권좌에 앉힐 것인지와 더불어 특정 집단이 지나친 권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을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같은 '견제'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은 우리의 이성적 사고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가 어떤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때그때 합당한 이유를 들어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그것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성은 자신이 내린 판단과 선택을 다른 사람이 내린 판단이나 선택을 대하듯이 관조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그것이 충분히 합리적이었는지를 비판하고 스스로 반성할 수 있다. 우리가 일기를 쓰고, 크건 작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자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이성의 자기 반성적 능력 덕분이다.
스스로에 대해 열려 있는 태도를 갖는 것, 자신이 지닌 또 다른 가능성을 통해 현재의 부당한 자기합리화를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적 존재가 가진 가장 핵심요소이다. 일기를 쓰는 동물이나 자책하는 동물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이와 같은 자기 객관화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성임이 분명하다.
이런 자기반성적 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사람이야말로 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 나아가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만약 그와 같은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자신이 한 일을 '잘했다'고만 여길 것이고,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이를 알지 못해 잘못을 반복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매일 현재의 자신보다 나은 또 다른 자신을 생각할 것이며, 이는 우리를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 사회의 정치제도는 앞서 설명한 이성의 자기 반성적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자기편에 있는 사람들의 힘을 과시하도록 요구하거나, 무작정 편 가르기를 통해 상대방을 배제하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정치 구조의 합리성을 깨뜨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청소년들은 아직 선거권이 없지만, 자신이 투표한다면 어떠한 최선의 선택을 할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정치제도의 자기반성적 기능
'견제' 가능한 정치제도… 이성의 구조와 흡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