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본 논술] 하기아 소피아 성당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기사입력 2010.05.06 03:12

유스티니아누스가 극찬한 '비잔틴 미술의 정수'

  • AD 330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재위 306~337년)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오늘날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Istanbul)인 비잔티움(Byza ntium)으로 옮기면서 영광스런 로마시대는 막을 내렸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등극한 콘스탄티누스는 열렬히 기독교를 신봉했으며 폐허가 된 비잔티움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바꾸고 새로운 수도로 정비한다. 이후 1453년까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은 중세 미술의 황금기를 열었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 유산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비잔틴 미술의 정수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Ayasofya)'을 만날 수 있다.

    ◆비잔틴 미술의 최고봉, 하기아 소피아 성당

    이민족이 여러 차례 침략해 오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플에 거대한 규모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지어 국위를 과시하고자 했다. 이 성당은 도중(404년)에 소실돼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재위 482~565년)의 새로운 구상에 따라 재건됐다. 세계문화유산이며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도 꼽힌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대리석, 시멘트, 벽돌로 지어졌으며 전체 성당의 크기는 세로 82m, 가로 73m, 높이 55m이다. 세계 최대의 정교회 성당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하기아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Ayasofya), 비잔틴 제국, 537년, 터키 이스탄불.
    ▲ 하기아 소피아 성당(Hagia Sophia, Ayasofya), 비잔틴 제국, 537년, 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라고도 불리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감독 아래 532년 2월 23일에 공사를 시작해 537년에 완공됐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400여 년 동안 세계 최대의 도시임을 자랑했던 콘스탄티노플에 제국의 위용에 걸맞은 전무후무한 성전을 짓기 위해 당대에 유명한 트랄레스의 건축가 안데미우스와 밀레투스의 기하학자 이시도루스를 고용했다.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봉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로 로마시대 카라카라 황제의 목욕탕(Terme di Caracalla, Baths of Caracalla, AD 212~216년)과 같은 로마건축의 거대한 스케일과 동방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융합시킨 건물이다. 로마 제국 시대의 직사각형 바실리카 위에 둥근 모양으로 된 천정, 즉 돔(Dorm)을 올려놓은 형태로 지어졌다. 지상 55m에 놓인 거대한 돔 장식은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주위에 여러 개의 작은 돔을 두고 있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전체적으로 보면 여러 개의 돔 장식이 삼각형을 이루며 분포해 있다. 4개의 아치가 정사각형 모양을 형성하며 돔을 지탱하는 구조는 처음 시도된 것이다. 이전 두꺼운 벽으로 돔의 하중을 지탱하게 한 로마건축과는 달리 내부가 넓고 확 트인 느낌이 드는 혁신적인 구조이다. 여기에 40여 개의 창문이 돔의 하단을 둘러싸고 분포해 마치 후광을 주는 느낌이 들어 종교 건축물로서의 신비감을 주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 붕괴 이후 기독교계의 유일한 지도자였다. 그는 로마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교회를 짓고자 했으나, 실제로 완성된 건물은 전혀 새로운 양식을 보여줬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보고 매우 만족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 감동과 자부심이 얼마나 컸던지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풍부하고 섬세한 장식이 특징이다.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상의 화려한 모자이크와 십자가, 금색 바탕에 식물의 모티브를 그린 모자이크가 그 예이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값비싼 대리석 장식이 더해져 화려함이 배가 됐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는 곧바로 하기아 소피아 성당으로 향했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기념하기 위해 성당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이제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느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선언하면서 성당을 몰수하고 앞으로는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Mosque)로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그 후 성당 내부의 십자가가 떼어지고 성화는 석회 칠로 덮였으며, 이슬람교 사원건축의 특징인 네 개의 첨탑이 증축됐다. 이름도 '아야 소피아 자미'로 바뀌고, 술탄이 매주 금요일 예배마다 방문해 오스만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모스크로 여겨졌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자 그리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종교적인 복원과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터키 정부가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정하고, 그 안에서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종교적 행위를 모두 금지해 지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M�jzesi)'에 이르고 있다.

    이후 기독교 교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영감을 받아 돔 장식을 한 교회들이 앞다퉈 지어졌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많은 대성당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돔 구조를 모방하고 있다.


    ※더 생각해볼 거리


    1999년 8월 17일, 터키 서북부 이즈미트와 이스탄불 지역을 중심으로 리히터규모 7.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4만5000명이 죽고 50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이스탄불의 현대식 호텔과 고층 빌딩, 아파트 등은 다 무너졌지만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진이 나면 하기아 소피아 성당으로 피신하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1500년 전의 건축공학과 현대의 건축공학을 비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