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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은 대한민국 고교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책이다.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양하 선생의 수필, '페이터의 산문'에 일부가 소개됐기 때문이다. 비록 원전을 읽지는 못했더라도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 121~180)의 언어는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로마 황제라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면서도 섬세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성찰, 절제된 태도로 다가오는 그의 언어는 묵직하면서도 빛나고 명쾌하면서도 웅숭깊다.
최근에 발간된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역시 학창 시절에 저자와 그의 저서에 매료된 번역자가 정성을 다해 새롭게 옮긴 영한 대역판이다. 원래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인이었지만 당대의 교양어였던 그리스어를 사용해서 글을 썼기에 '명상록'을 해석하고 번역하기란 약간 애매하고 어색하다고 한다. 다행히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몇몇 뛰어난 걸작 번역판들이 아우렐리우스의 생각과 태도를 널리 알렸다. 서로 조금씩 다른 번역판의 내용은 번역자와 당대 독자들이 위대한 지성의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모습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도 견인주의자, 즉 욕망을 굳게 억제하며 도덕적 태도를 유지하는 견결한 영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인간의 본성이 허락하지 않는 무엇을 하거나, 본성이 용납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 행위를 하거나, 또는 지금은 그것이 허락하지 않는 무엇을 내가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213쪽)
또한 존재와 세계에 대해 사색하는 철학자, 즉 뛰어난 지성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는 후기 스토아(Stoa) 학파의 철학자로서 '명상록'을 종교서의 차원까지 겹쳐지게 한다. "인간의 삶에서는 시간이란 하나의 점이요, 존재하는 실체란 흐름이요, 지각이란 희미한 미광(微光)이요, 육체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는 썩어 없어지고, 영혼은 하나의 소용돌이요, 운명은 점치기 어려우며, 명성이란 미덥지 못한 판단의 소산이다." (53쪽)
'명상록'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할아버지 베루스에게서 나는 훌륭한 품행을 그리고 노여움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이어서 그는 아버지, 증조부, 가정교사, 디오그네투스 등을 언급하며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자세하게 말해준다. 이 대목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고귀한 사고와 기품을 지닌 최고 권력자이자 철학자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정신적 배경과 뿌리를 짐작하게 해준다(여러분 또한 주변에서 오늘의 자신을 낳게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해 보라).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로마의 현자들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철학을 가르쳤던 스승에게서 배웠다며 자연스럽게 스승의 미덕들을 언급한다. 스승은 어느 사람과도 당장 화합하는 능력을 지녔으며 친분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요란하게 과시하지 않고도 공감을 표현할 줄 아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어도 다양한 지식을 갖춘 인물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명상록'을 읽다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지혜로운 삶과 현자들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영혼과 언어를 놓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
책을 읽다 보면 '그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나오는 '그대'는 대부분 아우렐리우스 자신을 가리킨다. '명상록'은 고뇌하는 영혼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끝없는 자아 성찰의 독백서지만 책을 읽는 뒷날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생생한 대화의 초대말이 된다. 언제라도 손에 들고 아무 곳이나 펼쳐보면 생각할 거리를 무수히 찾을 수 있는 책,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 보고 인생과 현실, 우주에 대한 여러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 '명상록'은 문자 그대로 불후의 명저다. 그리고 우리의 앞 세대와 뒤 세대를 이어주는 영원한 소통의 인생론이자 철학서이다.
[논술을 돕는 이 한권의 책] 인간적 고뇌가 담긴 자기성찰 에세이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ㅣ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