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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판단이나 행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성'을 꼽는다. 물론 어떤 판단을 내릴 때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이성적 사유를 통해 옳고 그른 것, 결과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 기능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와 같은 주장은 타당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근거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상황과 관련된다.
일찍이 흄도 이성적 사유능력이 도덕적 판단이나 행동의 근거로는 매우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감정은 행위의 동기가 될 수 있는 반면, 이성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서적 동기를 바탕으로 이뤄진 행동이야말로 도덕적일 수 있다는 이와 같은 흄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은 점수를 위해 하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려움을 어루만지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이다.
흄만이 아니다. 동양의 큰 스승인 공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서(恕)의 실천을 강조했다. '서(恕)'는 용서의 뜻을 지니지만,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진정한 용서가 그 사람, 혹은 그 사람이 저지른 행위를 무작정 언급하지 않거나 외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보듬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함축하는 것이라면, 그 속뜻이 온전히 고려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행위를 나의 것처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의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다름 아닌 '정서적 동화'를 가리키는 것이니 공자와 흄의 주장은 분명 유사하다.
하지만 도덕적인 것과 관련해 정서적 요인을 중요하게 간주하려는 시도는 감정이 개인적인 마음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개인적 감정이 도덕적 판단의 근거로 강조될 경우, 과연 그와 같은 판단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정서적 동기를 도덕적 행위의 근거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러한 행동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칭찬이나 비난과 같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위와 같은 논리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자신이 느끼는 대로, 감정에만 충실하게 아무렇게나 살아도 도덕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흄이나 공자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정서적 동질성을 제기한다. 이들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원초적 정서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므로 동일한 상황, 적어도 유사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같은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고 강조한다.
흄이 '공감'이라는 사회적 정서를 말한 것이나, 공자가 '서(恕)'의 실천과 관련해 자신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라고 했던 것이 바로 그러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논의는 매우 유용하다. 비록 국가가 도덕이 아닌 법에 의해 지배되는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법을 정당한 것으로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법적 정신이며, 이는 그 사회의 도덕규범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수결원칙을 숭배하는 민주국가에서 지배적인 도덕적 정서를 바탕으로 다수의 의사를 통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국민 개개인들의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정책보다 훨씬 큰 현실적 에너지를 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MB정부가 들어선 이후, 강부자 내각이니, 1% 정권이니 하는 많은 비난과 비판들이 있었다. 이러한 평가의 이면에는 그들이 내세우던 거의 대부분의 정책들이 일부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 많은 국민의 정서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민의 부정적 공감대는 사회적 갈등이라는 국가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에너지를 생산했다. 이러한 와중에 한동안 지금의 야권에서조차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총리가 됐다. 아쉬운 것은 청문회를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공감대를 또 한번 경험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대해 볼 여지는 있지 않을까. 정운찬 총리가 이제까지 보여준 정치적 행로가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이 많고, 그 동안 했던 말 또한 많은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부정적 정서를 일소해 줄 행보를 보여주리라고 기대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 하여 그저 살아가기에 바쁜 서민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리고 어루만지는 정책을 많이 펼쳐주길 기대한다.
몇 년 안에 국민 총생산 몇 만 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는 거리감 상실한 이야기보다는, 실제로 서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공분하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주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이성과 감성의 판단
'도덕적 정서'로 통합해야 크고 현실적인 효과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