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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는 암이다. 필자의 가계(家系)만 보더라도 제일 가까운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둘째이모까지 모두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런 가족력을 잘 아는 친구는 유전학적 기질을 들이대며 필자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곤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던가. 암을 조심하자면, 우선 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것이 순서겠다.
암 덩어리는 사실 단순한 세포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같은 외부 기관을 이루는 세포처럼, 오장육부를 구성하는 세포처럼 말이다. 그런데 암 세포는 한 번 생기면 죽음이라는 걸 아예 모른다. 모를 뿐만 아니라 옆에 있는 세포를 자기와 똑같이 만든다.
그래서 죽음을 모르는 세포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이 죽음을 모르는 세포가 상대적으로 많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세포와 조직, 기관을 압박하고,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어 결국 생명까지 앗아간다. -
암을 다스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물리적으로 제거해 버리는 것이 한 방법이요. 힘을 잃게 만드는 방법이 나머지 하나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제거해 버려도 어느새 또다시 몸 구석구석 퍼져 계속 재발하곤 한다.
힘을 잃게 만들기 위해 항암제라는 것을 맞기도 하는데, 암보다 힘이 세다고 단정지을 만큼 효과가 좋은 항암제는 아직 없다. 뿐만 아니라 이 항암제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포들까지 한꺼번에 힘을 잃게 만들어서 약을 맞는 과정자체가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건데, 그것이 정말로 유전학적 질병이라면 암은 이미 내 몸속에 때를 기다리며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뿐만 아니라 완전히 내 몸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암과 친해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지 않을까.
물론 그 구체적 방법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답할 것이 없기는 하다. 하지만 암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암세포를 더 키우지 않는다는 많은 연구결과가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살피다 보니 암 덩어리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치 한 몸에 다양한 장기가 있는 것처럼. 물론 그런 사회 속에서도 소위 말하는 헤게모니, 즉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사람들도 있다.
마치 암세포처럼. 이들은 일단 주도권을 잡았다 싶으면 주변의 모든 것을 자기만의 시각과 관점으로 판단해 자신과 다른 것은 몽땅 없어져야 할 듯이 횡포까지 부린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이 사회가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암 덩어리가 온몸에 퍼지면 다른 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결국 생명을 읽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는 오히려 사회 전체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칼 포퍼가 경고한 '닫힌 사회'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또한 유추해 보건데 사회에서 '암적인' 존재들을 다스릴 때도 역시 암을 대하는 일반적인 방법과 암을 버릴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일부로 간주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다른 사람들, 정당한 조직들의 원활한 기능을 못하도록 만드는 경우에는 환부를 잘라내는 비장함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실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하다. 신라시대 원효가 불교종파의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사상적 갈등이 매우 컸다는 것을 알려준다. 고려시대 의천과 지눌이 교종과 선종의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린 이 분들의 결론은 한결같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진리와 맞닿아 있으므로 다툼이 다툼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이 가진 것을 끌어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결론이 비단 사회 전체에만 적용될 필요는 없다. 이성의 핵심적 작용에는 자기반성이라는 것이 있다. 따라서 자기를 반성하지 못하는 이성은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신념을 갖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성적 존재로서의 태도라 할 수 있다.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사회의 '환부'도 우리 구성원으로 인정했으면
암을 다스리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