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로 본 논술] 위안부 문제는 '국가에 의한' 성폭행 사건
강방식 동북고 교사·EBS 사고와 논술 강사
기사입력 2010.01.28 03:29

위안부 문제해결 위한'수요 집회'900회

  • ◆정대협 주최 '수요 집회' 900회째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는 일본 정부에 항의하는 900회째 집회가 열렸다.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의 다섯 도시와 독일에서도 함께 열렸고, 전 세계 여러 시민단체들도 함께 싸운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약칭 정대협)가 주최하는 수요 집회는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을 정도다. 정대협은 국회의원 299명 전원과 한국민 1%인 50만명의 서명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시민단체들도 일본 국민 1%인 120만명 서명 운동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서명 운동이 끝나면 일본 국회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 법안을 만들 것을 요구할 것이다.



    ◆수요 집회의 역사

    1991년 8월 14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종군위안부 출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 정부에 의해 가혹하게 위안부 생활을 한 경험을 증언했다. 이후 많은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에 동참하면서 군위안부 문제가 쟁점화 됐다. 18년 간 900회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이 고령이 되면서 하나둘씩 돌아가시기 시작했다. 첫 시위에서는 234명이 계셨는데, 지금은 87명만이 생존해 계신다.

    할머니들이 살아 계시는 동안 원한과 분노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다면 한·일 양국에게 씻을 수 없는 역사적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일본에 의해 성적 희생을 강요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시민 모금을 통해 1995년에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에 '나눔의 집(www.nanum.org)'을 마련했다. 이곳에 계시는 할머니들은 한글 수업과 그림 수업을 통해 마음과 몸의 상처를 치유하고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군위안부의 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제9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를 갖고 있다. 조선일보 DB
    ▲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참가자들이 제900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를 갖고 있다. 조선일보 DB
    ◆일본 정부의 대응

    1991년 위안부 강제 모집 사실을 폭로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국제적 논쟁이 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조사를 통해 담화를 발표했다. 당시 관방장관의 이름을 딴 '고노담화'에서는 일본군이 직접, 간접으로 간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사과한다는 발언을 했으나 그 후속 조치가 없어서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다. 고노담화가 발표된 이후 상당수의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록이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우경화 현상 속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 자체를 거부하고 있고, 교과서에서도 관련 사실을 폐기하고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실제 현장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위안부로 강제로 끌고 간 사례는 없고, 대신 중간 업자가 강제적으로 끌고 간 사례는 있다고 하는 등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민간 기금을 통해 해결하려고 시도했지만, 한국 측이 일본 정부에 의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거부했다.


    ◆국제 사회의 대응

    미국은 1997년 리핀스키 윌리엄 의원에 의해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첫 발의가 시작됐다. 이후 해마다 발의가 됐으나 일본 정부의 로비에 의해 계속 무산되다가 2007년에 일본계 미국인 3세 마이크 혼다 의원의 발의로 결의안이 채택됐다. 미국은 군위안부 문제를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한다.

    미국 이외에도 캐나다, 네덜란드, 유럽 의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됐다. 2003년에는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 세계는 인권, 여성, 평화의 문제로 군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정대협의 7가지 요구 사항을 토대로 만들어지고 있다. 7가지는 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 규명, 국회 결의에 의한 사죄, 법적 배상, 역사 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책임자 처벌 등이다.


    ◆군위안부 문제를 인식하는 다양한 지평들

    첫째, 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포함한 약소국 국민들을 탄압한 범죄 사건이다. 일본 군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기 위해 돈을 잘 벌 수 있게 해준다고 속이거나, 혹은 강제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 군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동아시아 중심 외교, 혹은 동반자 관계를 만들기 위한 지름길이다.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난 절대 안 죽는다"는 군위안부 할머니의 외침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 일본이 자신들의 경제력에 맞게 국제 사회에서 대접받는 최선의 방법이다.

    둘째, 군위안부 문제는 상업적 매매가 아니가 국가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시민의 인권을 무참히 유린한 것으로서 오도된 국가주의의 망령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는 근본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군위안부 문제는 전쟁 속에서 죄 없는 여성들이 이중으로 처벌받는 사례의 전형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還鄕女), 즉 화냥년으로 불렀다. 국가와 무능한 사회 지도층에 의해 국가가 환란을 겪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본 여성들을 나중에 절개가 없는 여성으로 폄하하면서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해방 이후에도 자신의 위안부 삶이 알려질까 두려워하면서 살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강탈당하고, 아름다웠어야 할 청춘을 잃어버린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몫은 한국 정부와 사회 지도층에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