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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 참사와 아이티에 대한 관심
2010년 1월 12일 16시 53분, 진도 7.0 규모의 강진이 아이티에서 발생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아이티에 집중됐고, 전 인류가 아이티의 비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현장을 직접 찾았고, 전 세계의 국가와 각종 NGO단체는 최대한의 원조를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즉각 119구급대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군대를 파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국제 뉴스에서는 연일 구호물품이 도착하고 있으나 치안 상태가 허술해 물이나 식량을 제대로 나눠줄 수 없는 처절한 상황이 보도된다. 사람들은 아이티가 지도에서 어디에 위치한 지도 몰랐으나 이제는 아이티 역사와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아이티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정치적 불안정과 지도자의 관계, 경제적 빈곤과 국제 무역의 관계, 빈부 격차와 자본주의의 관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탐구 활동이 되고 있다. -
◆아이티의 역사
아이티는 카리브해의 섬나라로 쿠바와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 있는 작은 국가이다. 이 섬은 스페인 국왕의 후원으로 인도의 황금과 후추를 찾아 떠난 콜럼버스의 탐험에서 인도로 착각했던 땅이다. 콜럼버스는 자기가 발견했다고 해서 스페인의 섬이라는 의미로 '히스파니올라'라고 이름 붙였다.
하워드 진이 쓴 '살아있는 미국역사'라는 책에서 보면 스페인인들은 아이티 원주민들에게 황금을 찾아오라고 시켰고, 개를 풀어서 도망치는 원주민들을 잡아 목을 매달거나 불태워서 죽였다고 기록돼 있다.
결국 원주민들은 전멸됐고, 그 땅에 대신 프랑스가 들어와 기니, 세네갈 등 서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노예들을 데려다가 농장을 운영했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설탕, 커피의 절반 이상이 아이티에서 생산됐을 정도였다. 원주민들의 용어로 '산이 많은 땅'의 의미를 가진 아이티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에 대항, 1804년 독립을 쟁취했다.
세계 최초의 흑인 노예들에 의해 설립된 공화국은 강대국과 다국적 기업의 개입, 그리고 국내 정치 혼란 등으로 세계 최대의 빈곤 국가가 됐다. 인구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됐다. 아이티는 마치 아프리카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아이티 빈곤의 책임: 국내적 요인
지진 발생 이틀 뒤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통령의 현실이 상징하듯이 정치 지도자들은 무능과 부패로 찌들었다. 1957년부터 1986년까지 독재자 뒤발리에 부자(父子)에 의해 통치되는 동안 경제는 쇠퇴했을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가 극심해졌다. 부자 1%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실업률과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으며, 임금은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다.
1991년 한 해에는 네 번의 쿠데타로 대통령이 바뀌었고, 독립 이후 200여 년 동안 3~40여 회 이상 쿠데타가 일어났다. 권위주의 통치로 국민들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고 수십만의 보트피플이 목숨 걸고 아이티를 떠나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가 없을 때 국민의 삶이 어느 정도까지 나빠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아이티 빈곤의 책임: 국제적 요인
15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주로 스페인, 프랑스, 미국의 간섭에 의해 철저히 지배됐다. 프랑스에서 독립하는 대가로 프랑스에 엄청난 돈을 지불했는데 프랑스로부터 돈을 빌리면서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에 예속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직접 점령을 하기도 했고, 국제적 역학 관계의 변화에 따라 아이티 국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쿠바를 견제하기 위해 부패한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미국으로 난민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해 쿠데타로 무너진 정권을 복구시키고, 개혁정치가 시작되자 국제금융기구의 차관과 원조를 끊어버렸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농업개방과 선진국이 요구하는 각종 구조조정은 100%에 가까운 쌀 자급률의 국가를 쌀 부족 국가로 바꿔버렸다.
2008년에는 식량 부족으로 폭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몰락한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도시 빈민과 실업 문제가 악화일로에 있다. 외세의 개입에 의해 한 국가가 무너지는 과정이 소설처럼 전개된다.
◆질병의 시각으로 본 아이티의 현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유럽인들의 감기가 원주민들을 멸망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 스페인인이 아이티를 정복할 때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가 원주민을 몰살시켰다. 아이티인들이 프랑스와 독립투쟁을 벌일 때 강력한 나폴레옹 대군을 물리친 것은 흑인 노예들의 단결력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열병이라는 풍토병이었다.
MBC에서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에서도 원주민들이 외부인과 접촉하면서 말라리아에 감염돼 부족의 위기가 발생하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1982년 아이티에서는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서 농촌 경제의 핵심을 차지했던 '꼬션와'라 불리는 토종돼지가 있었다. 이 돼지가 돌림병에 감염되자 미국이나 캐나다로 전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기구는 전부 도살했고, 미국 품종의 돼지를 수입하도록 했다.
미국 돼지는 '네 발 달린 왕자'로 불리며 아이티의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해 아이티 농촌 경제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됐다. 현재 아이티의 굶주린 어린이들은 진흙쿠키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진흙 속에 있는 기생충에 감염될 가능성을 매우 높여서 아이티 어린이의 국민 건강을 심각히 위협한다. 마치 유전자가 생물의 생태를 지배하는 것처럼 질병이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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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슈로 본 논술] 아이티 또 하나 비극… 최빈국 추락에는 책임자가 있다
아이티 지진 참사와아이티 빈곤의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