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을 돕는 이 한권의 책] 농사꾼 아들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삶의 가치·통찰력 일깨워
허병두 숭문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기사입력 2009.09.03 06:51

희망을 심다 박원순·지승호 지음|알마출판사

  • 농촌에서 출생. 읍내 중학교까지 왕복 12㎞ 통학.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서울로 올라와 독서실과 입주 과외, 전셋집 전전. 대학 합격 후 몇 달 만에 투옥. 사법고시 합격. 검사 생활 일년 만에 사표 제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시민운동가로 변신. '아름다운 재단'을 세워 모금 전문가로, '아름다운 가게' 같은 사회적 기업의 창업자로, 현재 '희망제작소'에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로 활약 중.

    이상은 시민운동가 박원순 선생의 간단한 이력이다. 하지만 마침표와 쉼표 사이를 좀더 톺아보면 궁벽 진 농촌의 어린이가 어떻게 삶의 올곧은 가치에 눈을 뜨고 이를 온몸으로 추구하며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른으로 자리 잡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희망을 심다'는 고민하고 꿈꾸는 영혼의 자취와 성과를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다. 열정적인 영혼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자신은 물론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삶의 귀중한 가치란 과연 무엇인지, 이를 실현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분히 곱씹어 볼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석 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고 공부했다는 이야기, 검사를 그만 두고 학문에 힘쓰고 싶었던 청년이 인권변호사로 시대의 영웅들을 변론했던 회고담, 민주주의 세상이 왔으나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요원한 현실을 통찰하고 개혁하고자 유학을 떠난 사연 등이 생생하게 제시된다.

    정치와 같은 거대한 차원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면면에서 저자의 행동과 사고, 실천은 더욱 빛난다. 이를테면, 공부하라는 말 대신에 오히려 공부하지 말고 그저 소박하게 살라던 부모님, 땅콩 껍질로 지나가는 여학생 맞추기 놀이를 하던 장난꾸러기, 그러나 성실하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부모님 아래서 끈기 있고 집중력 강한 자신의 장점을 살려 무엇이든 열심히 파고들던 공부벌레. 바람직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과감하게 자신을 변신해 왔던 인생 디자이너.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은 '박원순'이라는 인물을 대담 형식으로 펼쳐낸다.

    '희망을 심다'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 박원순의 경험과 태도, 생각과 비전은 구체적이고 감동적이다. 우선 그는 책을 귀하게 여기며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유산인 책을 읽기 위해서 영어와 일본어, 불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학습 또한 젊은 시절일수록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젊은 시절에 언어 공부를 해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저는 그게 새로운 문명, 또 다른 우주와의 셔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세계를 알게 되면 우리가 좀 더 진취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기 우주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가 본 만큼, 자기가 이해하는 만큼,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우주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 우주는 다 다르지요. 나이가 열 살이면 벌써 의사소통이 되고,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면 인류가 지난 5000년 동안의 역사 동안 쌓아온 지혜를 대충 다 이해하잖아요."(48쪽)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도서반을 비롯한 여러 동아리에서 또한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사고를 체계화 하는 데 힘이 됐으며 공부 방법 또한 창조적으로 만들었다고 밝힌다. 남달리 끈기 있고 집중하는 자세 또한 언제나 낙관적인 태도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가 어떤 파란만장한 굴곡을 감수해 왔는가,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변혁시키고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는가,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좀더 감동 깊게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사람의 눈과 발, 가슴에서 시작한 운동이 얼마나 근사하게 발전해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공부한다는 것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며 행동하고 실천하는 인물, 바람직한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며 기존의 때 묻은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인물, 어떤 자세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인물, 일하다 과로사하는 게 꿈이라는 인물, 박원순. 시민운동가인 그의 책 '희망을 심다'를 펴면 최근세사와 이를 이성과 열정으로 뚫고 온 한 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