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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인류의 영원한 문자(文字)다. 밤하늘의 페이지와 갈피 속에서 무한히 빛나는 문자다. 지구 위의 인간들이 빚어내는 모든 숨결은 밤이 되면 별로 모이고 낮이 되면 다시 인간의 삶으로 펼쳐 나온다.
흔히 문자의 종류를 셋으로 나눈다. ①회화문자(繪畵文字, pictogram: 그림글자), ②표의문자(表意文字, ideogram: 뜻글자), ③표음문자(表音文字, phonogram: 소리글자) 등이다. 별은 그림과 의미와 소리를 지닌 문자로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우주를 근사하게 엮고 새롭게 낳는다. 별은 인류 최초의, 그리고 우주 최후의 문자다.
'별은 시를 찾아온다'는 우리 시인들이 별을 보며 삶을 노래하고, 삶을 빚어 별로 만든 '별과 삶과 시' 모음이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가 발사된 1957년 이후 출생한 시인들이 쓴 시들만 모았단다.
'아니 생뚱맞게! 스푸트니크호 발사 기념집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책머리에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와 출판사가 공동으로 기획 출판한 성과라고 소개하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히려 이렇게 과학과 문학, 우주와 현실, 연구와 창작을 소박하게나마 융합하는 시도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참여 시인들의 희망에 따라 인세 모두를 낙도의 도서관에 시집을 보내는 데 사용한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시인 50명이 쓴 50편의 시를 읽다 보면 수많은 은하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별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어느새 별이 인간의 삶과 시에 얼마나 오묘하고 근사하게 얽히고설키며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주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다. 별을 빛나게 하는 삶, 삶을 빛나게 하는 시, 시를 빛나게 하는 별 등, 서로 무한히 빛나게 만드는 삶과 예술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시인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은유와 상징, 함축이다. 그래서 100원에 스무 개씩 하던 '환희' 담배의 불빛이 왜 백발과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별빛이 됐는지, 방년 열일곱 살의 별이었던 할머니가 연기로 사라졌는지 잠시라도 곱씹어야 한다('환희라는 이름의 별자리'에서, 권혁웅 지음).
또 자신의 내면과 지상의 삶, 천상의 우주가 서로 긴장하며 밀고 당기는 언어의 풍경을 낯설게 확인해야 한다. '타오르는 마음의 혁명 게르에 투숙하는 마음으로 쓴다// 시 위에 별이 뜬다, 아니 인간의 의지 위에 오롯이 별은 뜬다'('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따라가는 삶의 사소한 선택들 혹은 소금과 별들의 순환 이동 경로'에서, 박정대 지음)
이렇듯 해석과 감상이 동시나 동요, 민요를 접할 때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50편의 시마다 해설자들이 호흡을 맞춰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창작과 평론,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답게 따뜻한 애정과 깊은 공감으로 시를 곱씹으며 빛나게 밝혀준다.
"시의 본질 깊은 곳에는 우주에 대한 그리움이, 그리고 태양과 달과 별들에 대한 미적 감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해가 뜨면 일하고, 달과 얼굴을 마주하면 잠을 청하며, 공전하는 지구가 계절의 상이한 구간들을 주파할 때마다 어느 날은 차가워지는 가을의 들판을 걷고 또 어느 날은 봄날의 처연한 꽃잎 아래 서 있는 인간이 쓰는 시들은, 우주 곳곳을 조금씩 비추는 작은 거울들인 것이다."(서문에서)
해설자들은 혼잣말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심도 있게 시를 파고든다. 이들의 해설을 듣다 보면 문득 또 다른 시를 읽는 듯하다. 시를 여러 차례 읽으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조금씩 정리하고 다시 정갈하게 글로 담아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의 해설과 함께 견주어 보면 시집 한 권에서 무한한 시와 삶, 현실의 우주를 탐닉하고 통찰할 수 있다.
자신 속에 갇혀 세상에 눈을 감으면 인간의 지성과 감성은 폭발하거나 팽창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화집들을 넘겨보면서 시에 어울리는 명화들도 찾아보고 인터넷에서 그림 이미지를 담아 곁들이면 금상첨화. 다시 시에 어울리는 음악까지 곁들여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올려 보자. 우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적절한 시를 쓴 메모지를 책갈피 속에 곁들여 보는 것도 좋겠다.
시인들은 도대체 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지 발상의 지형도(地形圖)를 그려 보자. 시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서로 비슷한 은하계, 다른 우주에서 빛나고 있는지 시의 천문도(天文圖)도 그려보면 어떨까. 나는 앞으로 어떤 별이 될 것인지도 따져보고, 어느 분야를 밝히고 싶은지 가늠해 보자.
[논술을 돕는 이 한권의 책] 첫 위성 발사 후 태어난 시인들이 쓴 시집
별은 시를 찾아온다 (김기택·정끝별 외 공저|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