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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기자 인권 침해 사례 조사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연기자 111명, 연예지망생 240명, 연예산업관계자 11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인권실태를 조사했다.
지난해 성 접대와 관련된 문건을 남기고 자살한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처음 진행됐다. 10명 중 6명이 성 접대 요구나 제의를 받았고, 6.5%는 성폭행까지 당했다. 스폰서를 자청하면서 몸을 요구하고, 2명 중 1명은 성 관계를 거절하여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말했다.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은 다반사이고,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무시되어 성형수술을 강요받기까지 했다. 화려한 연예인 생활 속에 감추어진 암울한 세상이 연예계의 숨겨진 이야기 정도로만 알려지다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이에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 노동조합은 인권침해가 만연한 대중예술계의 구조적 병폐를 해결할 정부의 대책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여성 연기자 인권 침해의 원인①: 연예계 구조
인권위 관계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은 연예계 특성상 여성 연예인은 활동을 위해 성 및 신체의 자기 결정권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만으로 여성의 성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공무원이나 교직 분야에도 여성의 성 상품화 문제가 심각해야 한다. 공무원이나 교직 분야는 객관적인 평가시험을 통해 취직이 되는 반면에 연예계는 방송사 PD나 기획사 담당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크게 좌우되고,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캐스팅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연예기획사들은 연예인, 혹은 연예지망생들의 스폰서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다보니 재력가나 광고 관련 기업인들과 성적 거래를 유지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들이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각종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최종 결정하는 것은 지상파 방송 3개사이다.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보다 상당히 우월한 지위에 있는 방송사 캐스팅 담당자들이 연예인들의 성 접대와 관련한 사건에 몇 년에 한 번씩 등장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연예기획사들과 연예인들이 맺은 계약이 노예계약으로 불릴 정도로 불공정하여 연예인들의 인권 상황은 처참할 정도이다. 지나치게 긴 계약기간, 계약을 파기할 경우 과다한 손해배상, 불리한 수익금 배분, 과도한 사생활 침해, 연예활동의 일방적 지시 등 숱한 내용들이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옥죄고 있다.
◆여성 연기자 인권 침해의 원인②: 사회문화 구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접대 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남성들은 미모의 젊은 여성들로부터 술시중을 받고, 심지어 성 접대까지 받는 것을 성공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왜곡된 인식이 지배적이다.
대중들이 여성 연예인들에게 가지는 이중적인 인식이 여성 연예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은밀하고 음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정작 연예인들의 문란한 성생활이 도마에 오르는 경우에는 냉정한 도덕주의자 시선으로 재단한다.
포스트모더니스트인 라깡은 "나는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실제 상태를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허영의 틀을 쓰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에 도덕적 덕목 속에 숨은 진짜 감정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상황에 따라 괴리되고 분열된 가치를 편리하게 적용한다. 그러다보니 연예인과 대중들은 왜곡된 구조 속에서 소통하면서 문제 상황을 자꾸만 만들어 낸다.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는 것은 남성보다 한참이나 아래에 있는 여성의 경제적·문화적 권력 구조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여성의 몸은 포장돼 소비되기 위한 진열대에 오르게 된다. 광고 시장에 여성의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여성 연기자 인권 침해 해결 방안
아무리 연예계와 사회문화 구조가 여성 연예인들의 인권을 침해할지라도 이 세계에 몸을 담기로 최종 결정하는 것은 연예인 본인이다. 자신의 몸은 인격을 드러내는 존재로서 그 누구에게도 양도하거나 침해될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해친 재소자들에게 사람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인문학 수업을 하는 것처럼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 특히 인권 교육이 방송사, 기획사, 혹은 연예인 단체에서 제도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여성 연예인의 인권 침해 상황이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이번 인권위의 조사는 제2, 제3의 장자연이 끊임없이 나올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을 보여준다. -
노동과 직업의 입장에서 크게 바라보면 연예인을 꿈꾸는 것은 예비 연예인들이 자신의 실업 상태를 극복하고 취업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몸부림이다. 작은 가게에 고용되어 일을 하는 경우에도 근로계약이 있고, 근로기준법이 있듯이 연예 관련 산업에도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인격권과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작년 7월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예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연예 산업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표준계약서를 제정했다. 이에 대해 기획사들은 당사자 간의 자유계약 원칙을 위배하고 신인 연예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초기 투자비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지나친 규제는 국제화되는 연예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지만 다른 나라와 적극적으로 협력을 해야 하는 최근의 연예 산업 구조에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제도 마련은 한류를 세계화해야 할 상황에서 시급하고 절실하다. 공개 오디션 문화를 정착하고 연예기획사업자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연예인들의 문제는 결국 연예인들이 풀어야 한다. 자신들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위한 노조나 단체를 설립하여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했을 때 편안하게 상담해주고, 바람직한 방향을 멘토해주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시사 이슈로 본 논술] 폐쇄적 연예계 구조·대중의 이중잣대부터 변해야
여성 연기자의 인권 침해 해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