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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어떤 사태를 야기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하곤 한다. 기계적 원인, 역사적 원인, 목적적 원인이 그것이다.
우선 기계적 원인이란, 우리가 흔히 자연 과학적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세계의 모든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경우, 일어나는 일의 선후과정을 물질 간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는 경우에 언급된다. 예를 들어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것이 앞선 톱니바퀴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앞선 톱니바퀴가 연이어 돌아가는 톱니의 기계적 원인이 된다.
다음으로 목적적 원인은, 어떤 의지를 가진 존재의 의도를 원인으로 제기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존재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초월적 존재일 수도 있다. '벌어지는 일의 배후에 신의 섭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판단이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처럼 초월적 존재의 섭리를 논하는 것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설명에 해당하며,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이들은 대개 그 목적의 주체로 '사람'을 꼽는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원인은, 어떤 사태의 원인을 역사적 흐름의 한 과정으로 제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설명방식은 주로 역사의 과정을 필연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구 스토아학파가 역사를 로고스의 의지로부터 필연적인 어떤 것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모든 것이 원인과 조건에 따른 결과라고 이해하는 불교의 연기설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 원인을 제외하고 앞선 두 원인은 학문, 즉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된다. 물론 역사적 원인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한말 우리 주권이 일본에 넘어가는 과정을 제국주의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통해 설명하는 경우가 그러하며, IMF 사태의 원인을 세계적 불황에서 찾아낸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태에 대한 분석은 기계적이고, 의도적인 차원을 찾아내는 것과 관련된다.
자연과학에서 목적인을 논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몸속에 피가 순환하는 이유를 세포나 조직에 영양분을 공급해주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사실 적혈구가 의도를 가진 존재가 아닌 한, 영양분 공급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고 설명하는 것은 자연과학적 입장에서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와 같은 목적을 상정하지 않고서야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자연과학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의도적 설명을 차용하는 것이다.
물론 사회과학에서도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 이용하기 위해 기계적 원인을 분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을 조건적 자극에 의한 반응으로 분석하는 경우에 그러하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물건을 진열할 때 김밥 옆에 라면을 배치하는 경우를 보자. 이는 사람들은 '김밥을 먹고 싶다'는 심리적 조건에 따라 '라면을 먹고 싶다'는 조건반사적 심리를 갖게 된다는 통계적 분석을 활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현상에 관한 설명은 기계적 설명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계적 선후관계가 분명해지고 그 선행조건이 의도를 지닌 사람과 필연적으로 관련됐다는 분석이 나와야만 그 사람의 의도가 곧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누군가가 살해의도를 가졌다는 정황만으로는 실제로 살해를 했다고 간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살해당했다면, 그를 죽게 한 물질적 원인, 즉 살해도구가 있을 것이다. 그 살해도구와 누군가의 관계가 필연적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의도가 살해의 핵심적 원인이 된다. 이 도구와 도구사용 주체 간의 필연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범인은 누구라도 되고, 누구도 범인이 아닐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음모론'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음모론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계적 물증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회를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고 가려는 초법적인 존재만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뿐이다. 하지만 이는 합리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것이며 우리가 지양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천안함 사태의 원인에 대해 섣부르게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 것도, 아니면 누군가 초법적 실체에 의한 음모론을 내세우는 것도 여전히 가설일 뿐이다. 심증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으나, 그 심증을 확인해줄 기계적 원인, 즉 물증이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천인공노할 의도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라면 응분의 조치를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취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조치와 그에 따른 결과는 사회적, 국제적으로 파급력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사태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한 절차 없이 의중만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며 책임을 묻겠다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은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호통만으로 모든 범인을 만들어내던 시대에나 어울리는 일일 뿐이다.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심증뿐인 음모론… 호통은 물증 확보한 후에
사건의세 가지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