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김길태 사건으로 본 '발생학적 오류'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철학, 논술에 딴지 걸다' 저자
기사입력 2010.03.18 06:45

입양된 과거만으로 그의 범행이 설명될까?

  •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졌다. 성폭행, 살해, 유기…. 금지옥엽처럼 소중한 딸아이를 키우는 필자이기에 기사를 접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렵다. "범인은 죽어 마땅하다"고 비분강개하는 사람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용의자 김길태가 붙들려 있는 경찰서에 시민 1000여 명이 몰려들어 성토했다고도 하고, 연행하는 과정에서 그를 때려주기도 했단다.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와 같은 짓을 저지른 범인이 아니라고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속이 확 뒤집히면서도 마음 한 편에서 '어?'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여전히 피의자 아니던가?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길태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이 사건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한 것은 아닐까? 물론 그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감정에 휩쓸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혹은 엉뚱한 사람에게 생각지도 않던 피해를 남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자는 말이다.

    우선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김길태라는 사람이 수사 전면에 부각됐을 때, 많은 언론은 '교회 앞에 유기된 아이, 흉악범으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불우한 과거를 현재 저지른 악행의 원인으로 간주하기에 나온 생각이리라. 하지만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있었던 일이 지금 그가 저지르는 행동 모두를 설명해 준다는 사고는 매우 단순하다.

    논리학은 이를 '발생학적 오류'라는 이름으로 지적한다. 발생학적 오류란, 어떤 사태가 발생 시점에 가지고 있던 성질을 현재에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불합리한 추리를 가리킨다. 이는 어떤 사태의 성장, 혹은 진행 과정 전체를 다루는 것과는 다르다. 과정 전체를 다루는 것은 행동(사태)과 행동(사태)의 원인이 되는 일들을 인과적으로 묶어 연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와 달리, 과정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 없이 맨 앞과 맨 뒤만을 놓고 인과 관계를 설정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다.

    본인의 제자 중에도 김길태와 동일한 과거를 지닌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 역시 친부모의 얼굴을 모르지만, 지금은 매우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역사적 격변기를 겪은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언론의 기사 제목을 보고 과거와 현재의 과오를 필연적으로 묶어 비난한다면 그와 같은 과거를 지닌 다른 사람들에게 크나큰 아픔을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의 언론보도 과정을 반성하면서 묘하게 오버랩 되는 사건이 있다. '부녀간의 근친상간, 그리고 독극물에 의한 엄마(아내) 살해'. 이 정도의 정보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 사건도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검찰은 물론, 언론 또한 그들이 아직 피의자 신분을 망각한 채 범인이라고 확정 짓고 사건의 앞뒤를 마구잡이로 뿌려댔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법원은 그들의 잘못을 꾸짖지 않고 검찰과 경찰의 성급함을 탓하는 것으로 판결했다.

    물론 검찰의 항소로 2심을 앞둔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어쭙잖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이며,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1심의 판결대로 그들이 실제 범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들에게 잘못된 비난을 쏟아냈다는 허탈함과 동시에 진짜 범인이 우리 주변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감당해야만 한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진짜 범인에 대한 증오를 삭이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무리 언론에서 그것을 사실로 보도한다고 해도, 그것이 '진실'임을 보장하는 근거는 여전히 부족하다. 언론의 보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결정적 오판을 저지르지 말고 법적 판단이 확실해 진 다음 참았던 분노를 터뜨려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