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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루저 논란'이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그 영문표기도 'looser'라 하여, 우리가 흔히 패배자의 의미로 사용하는 'loser'와는 다르니, 또한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그냥 패배자를 강조하는 의미로 쓰인 말일 수도 있다는 둥, 나사 빠진 사람, 혹은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속어의 표현이라는 둥.
어떤 의도로 썼건 그것이 좋은 의미가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루저는 있을 수 있다. 인간 깊은 내면에 누군가와 끊임없이 경쟁하려는 마음이 남아 있는 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사실 '루저'라는 말이 사회적 이슈가 된 표현이긴 하지만, 문젯거리로 볼 순 없다. 오히려 그 단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판 것은 그 기준이었다. 남자의 키 180cm. 당사자가 선명하게 그어놓은 기준은 180cm이었다. 참 크다.
180cm라면 한 때는 너무 높은 곳에 살고 있으니 어지럽지 않느냐고 놀림의 대상이기도 했던 그런 키다. 헌데 그 키에 미치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세상 속 경쟁에서 진 것이라고 까발렸으니, 그들이 분기탱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 하필이면 180cm이냐고, 차라리 170cm정도만 됐어도 이처럼 거대한 공분을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을…' 그 말을 들은 사람들 중 또한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헌데 씁쓸하다. 180cm과 170cm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크고 작고, 그 기준에 속하는 사람이 많고 적고. 뭐 이런 차이 말고 실상 어떤 차이가 있을까?
'꿀벅지' '초콜릿 복근' 등은 이제 누리꾼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단어가 됐다. 이 단어들이 안고 있는 사회적 의식이 180cm이건, 170cm이건 키를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이해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필자뿐일까?
'유교적 점잖음'과 멀어져 버린 많은 현대인들은 그러한 표현에 환호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랬던 사람들이 단지 180cm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준으로 '루저'라 했다고 이렇게 광분하는 것은 사실 황당하기까지 하다.
물론 다음과 같은 항변도 가능하다. "'꿀벅지' '초콜릿 복근'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것일 뿐, 그렇지 않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그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므로 오히려 당신이 흑백사고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와 같은 항변은 반대와 모순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져 논리적으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논리적 세계 속에서 자신들이 잘한 것은 아닐지언정 잘못한 것은 아니라는 불평은 다소 부끄러워할 일이다.
현실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 본다면 많은 사람들은 역시 '꿀벅지'와 '초코릿 복근'의 유혹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꿀벅지를 좋아하는 것'과 '꿀벅지를 싫어하는 것'은 반대관계이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양자택일의 문제로 주어졌을 때, 논리적 반대는 현실적 모순관계로 둔갑하게 된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외모가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으로서 갖는 한계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속담에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美)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자연스러움에 얽매여 사는 존재일수만은 없다. 말이 좋아 자연스러움에 얽매이는 것이지, 그건 본능에 충실하다는 뜻일 뿐이다. 인간은 본능을 무시하며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본능만으로 살지 않는다.
가치를 추구하고 가치를 만들어가며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것 역시 인간의 특권이다. 물론 '루저'를 언급한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회가 진정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갖추려면, 화살을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어야 옳다. 한 사람의 잘못을 마녀사냥 하듯 몰아세우던 우리자신 안에 그와 똑같은 짐승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모두가 고백하고 서로를 거울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던가.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고….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루저 논란
'꿀벅지' 표현은 왜 왈가왈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