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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연월(康衢煙月).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힌 말이다. 여러 대학의 여러 교수님들과,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대학신문에서 설문조사해 나온 결과다.
강구연월(康衢煙月)은 편안할 강(康), 네거리 구(衢), 연기 연(煙), 달 월(月)의 네 한자를 묶어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고 있는 평화로운 거리'를 묘사한 것이다. 마음에 그려보니 참으로 태평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귀신이 나올듯한 을씨년스런 풍경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거리에 들어섰더니 보이는 사람은 없고 달은 떠 있고, 어디선지 연기만 모락모락 피어나니, 곧 유령이라도 나올듯한 분위기마저 읽힌다. 그런 거리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그런 거리가 태평성대라고? 그야말로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강구연월'이라는 네 글자가 '태평성대'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말의 속뜻을 태평성대와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은 그 연원 때문이다. 중국 요 임금 시대의 '강구요'(康衢謠)라는 동요가 바로 이 사자성어의 연원이다. 강구요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편에 나온다.
요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던 해 민심을 살펴보려고 미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더니,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이 노래가 바로 '강구요'(康衢謠)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속뜻을 알고 나니 다소 의문이 풀린다. 강구(康衢)가 이미 번화한 거리였으니 사람이 전혀 없다는 필자의 이해는 오해였다. 하지만 오히려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고개를 든다. 그것이 진정한 태평성대라고? 노랫말은 임금과 백성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내가 살아갈 수 있음은 오로지 임금님의 덕이요, 내가 나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얻어낸 성과라는 승리의 감흥이나 만족은 어디에도 없다. 강구요는 그저 종인 백성들이 주인인 요 임금을 칭송하는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강구연월'이라는 사자성어는 별 탈 없이 지내는 태평함을 뜻한다고 읽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이 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해 그 과정이나 절차야 어떻건 무사안일한 상황만을 희구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는 정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사회는 이미 왕조시대가 아니라 민주사회가 아니던가.
하지만, 실제로 민주주의보다 이상적 독재를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다. 정말로 냉철하고 사리판단이 분명한, 그러면서도 진리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또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수적인 우세만 믿고 까부는 우민에 의한 통치보다 백배 낫다고 주장한 플라톤이 그러하다. 패권주의에 따라 명분 없이 힘과 권력만 믿고 부국을 향해 몸부림치던 각 나라의 제후들에게 덕치를 주장했던 공자와 맹자가 그러하다.
동서철학의 역사를 기초세우는 사상가들에게서 이상적 독재자를 노래한 흔적을 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물론 이들이 살았던 시대적·사회적 맥락은 다르다. 공자와 맹자는 왕조시대를, 플라톤은 민주사회를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사상은 당시 실존적 상황 속에서 벌어진 많은 정치적 선택들이 허세에 불과함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수적인 권력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폴리스나 물리적 군사력만 믿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쉼 없이 베었던 제후국이 모두 비정상이라고 개탄하고 있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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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들이 주장한 이상적 독재자의 모습도 또한 매우 유사하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사모하는 철인(哲人)은 공자의 어질고 능력 있는 군주(君主)와 진배없다. 철인이건 군주건 한정된 지위와 자원을 가장 어울리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안배하고 분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쌍둥이처럼 동일하다.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의 역할과 책임을 논하며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상생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철학자들이 내세운 독재자의 모습은 이처럼 이상적 모습 그 자체이다. 이러한 권위를 가진 지도자라면 모든 사람들의 진심어린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강구연월을 희구하는 2010년 1월, 사회 각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앞선 선각자들의 이야기를 되새겨봐야 할 때이다.
[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철학자들이 논한 이상적인 지도자
강구연월의 태평성대는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