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을 위한 철학카페] 불만보다 건전한 비판이 사회를 발전시켜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철학, 논술에 딴지 걸다' 저자
기사입력 2010.02.11 06:56

'비판'에 대한 선조들의 고민'화쟁론'과 '이기론'

  • 지난번 필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제의 글을 썼다. 그러나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회가 발전하려면 비판은 꼭 필요하다. 서로 다른 삶의 지평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은 생각,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에 '비판'을 없앨 수도 없다.

    문제는 비판과 불평이 겉으로 보기에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비판하는 사람을 '불평분자' '불만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을 전혀 구분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발언의 기준이 무엇인지만 따져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건전한 비판은 보편적인 도덕적 기준이나 정당한 법적 기준을 근거로 한다. 반면 불만이란, 그저 개인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손해 보지 않겠다는 발버둥일 뿐이다. 그러니 이 둘을 같은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 기본적으로 '비판적 사고'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다.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은 사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 비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합리적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 법은 그 기준의 최소치이다.

    모두 알다시피 민주주의의 기본은 법에 의한 통치이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행위가 법적 기준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바로 '비판'이다. 당연히 비판적 사고와 행위는 민주사회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모두에게 요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비판을 서로 다른 입장 간의 대립을 해소하고, 사회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만한 능력이나 소양을 가졌는가 하는 점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 다수결인데, 이 뜻을 '다수 맘대로'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는 곧 다수의 횡포일 뿐이며, 불만세력이 힘을 가질 때나 보여주는 행태이다. 그러한 행위가 우리 사회 곳곳에 자주 나타난다면, 우리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시대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비판을 어떻게 보다 발전적인 토양으로 삼을 것인지 고민한 모습은 우리 선조의 지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효의 화쟁론도 '쟁(爭)'을 의미 없는 것으로 단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쟁(爭)'하는 과정 자체를 발전적 토대로 삼고자 한 것으로 해석해야 옳다.

    동양사상의 밑그림이라고 하는 태극사상에서도 음과 양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제거해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도 마찬가지다. 이기론은 이(理)와 기(氣)의 관계를 불상잡(不相雜 : 서로 섞이지 않음)이면서 동시에 불상잡(不相離: 서로 분리될 수 없음)으로 설명한다.

    음 없는 양이나, 기 없는 이는 있을 수 없다. 음과 양의 기운이 적절히 소통해야만 태극의 기운이 성할 수 있고, 이와 기의 역할을 모두 인정해야만 자연이건 사회이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다양한 사람이 어울려 사는 민주사회에서 '나만 옳다'는 생각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의 입장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없는 일을 꾸며 정당한 직위에서 몰아내는 행위, 정당한 권한과 합리적 기준에 의한 법적 판결이 자신의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판사에게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 집회나 결사 등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조차 뭉개버리는 행위 등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지 않다. 상식에 어긋나는 불평이나 불만보다 건전한 비판이 사회를 발전시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