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논술] 시대 흐름 따라 정치·이념적 요소가 점차 퇴색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기사입력 2010.02.11 06:56

남북관계 다룬 영화

  • 한국 전쟁 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 속에서 남북관계는 선과 악의 대결로 그려지곤 했다. 전우애를 강조하는 '빨간마후라' 같은 영화에서 우리 군의 위상은 드높여졌고 북한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으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똘이장군'으로 대표되는 교육용 애니메이션에서도 북한의 정치 지도자는 돼지로, 북한군은 늑대로 그려졌다.

    하지만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과 북의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진 남북관계와 그 이미지가 영화 속에 본격적으로 반영된 작품이 바로 1999년작 '쉬리'라고 할 수 있다.

    '쉬리'는 남북으로 나뉜 한국의 분단 상황을 영화적 주제가 아니라 소재로 끌고 들어 왔다. 신분의 차이나 집안의 반대 때문에 서로 헤어지거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연인들처럼 '쉬리'의 주인공들은 남한 정보국 직원과 북한 공작원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비극적으로 헤어지고 만다.

    '쉬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혹독한 군사 훈련을 받고 냉혈한 살인기계로 남파된 북한공작원에 대한 묘사이다. '쉬리'에 묘사된 북한군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등장하는 특수부대원의 모습과 닮았다. 북한군과의 국지전을 그려내는 솜씨도 분단의 참상을 그려낸다기보다는 전쟁 액션 영화의 스케일과 유사하다.

  • 영화 '의형제'의 한 장면.
    ▲ 영화 '의형제'의 한 장면.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그려낸 영화 중 그 변화를 짚어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 속에서 남한군과 북한군은 말투와 국적, 정치적 이념과 체제가 다를 뿐 인간적으로는 하나인 존재로 그려진다.

    남과 북을 나누는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벽일 뿐이다. 남한군은 용기를 내어 북으로 가서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음악을 함께 들으며 친구가 된다. 물론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결코 두 사람의 우정만으로는 남북관계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한을 같은 언어를 쓰는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5년 개봉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도 남한과 북한은 친구로 그려진다. 전쟁조차 피해간 산간마을 동막골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북한 잔류병들은 군복과 이념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를 발견한다. 그들은 하나로 뭉쳐 마을을 공격하는 외부 세력에 맞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의형제'를 본다면 재미있는 비교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형제'는 국정원 직원이었던 남자와 남파 간첩이었던 다른 한 남자의 우연한 동거와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정원 직원은 지금 흥신소에서 사람을 좇는 일이나 하고 남파 공작원 역시 공장잡역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인물이다.

    전직 국정원 직원과 전직 남파 공작원은 현직 흥신소 사장과 부하의 관계로 다시 만난다. 제목이 암시하듯 그들은 남과 북의 차이가 아닌 불쌍한 가장으로서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된다.

    영화 속에서 남북 관계나 정치적, 이념적 차별과 긴장은 드러날 일이 거의 없다. 남북한 관계가 중요한 배경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강렬하지는 않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영화 속 남북관계는 시대에 따라 그 질감이 달라진다. 영화에는 달라진 시대의 분위기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

    1. 남북한 관계처럼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소재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2. 역사적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 되곤 한다. 어떤 역사적 소재를 영화화한다면 재미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