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논술] 나폴레옹을 오이디푸스로 묘사… 이집트 정복 합리화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미술 쟁점-그림으로 비춰보는 우리시대' 저자
기사입력 2009.07.09 03:35

제롬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 이집트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힘들게 아프리카까지 가기보다는 선진국인 영국, 프랑스, 미국의 시설 좋은 세계 3대 박물관을 찾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거대한 박물관들을 호화롭게 장식하는 전시품이 대부분식민지 전쟁에서 약탈한 것들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특히 그 피해가 가장 큰 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지닌 이집트다. 프랑스 파리 시내 한복판에도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학의 창시국인 프랑스는 사실 본국인 이집트보다도 더 많은 이집트 관련 자료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 문명을 정교하게 부활시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 장 레옹 제롬,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캔버스에 유채, 1867~1868, 카이로 외교관 클럽 소장
    ▲ 장 레옹 제롬,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캔버스에 유채, 1867~1868, 카이로 외교관 클럽 소장
    서구 제국주의에 폐허가 된 이집트 문명

    이러한 서구 문화재 약탈자들의 선조가 바로 나폴레옹이다. 1789년, 나폴레옹은 5만여 명의 군대와 천문학자, 수학자, 화학자, 화가 등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길에 나섰다.

    원정대는 이집트 유적지를 탐사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약탈해 이집트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원정대로 인해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이집트학을 창시하고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등 가장 큰 연구 성과를 남겼다.

    이집트 기자지구의 3대 피라미드와 그 앞에서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스핑크스는 이집트 제4왕조(B.C. 2613~2494) 왕들인 쿠프왕(Khufu), 카프레왕(Khafre), 멘카우레왕(Menkaure)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스핑크스는 이집트의 수호신으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3900여년 후 이집트를 침범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대포에 맞아 코가 떨어져 나갔고, 턱수염은 나폴레옹이 거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역시 대포로 떨어뜨렸다.

    정복자의 야망을 생생히 그려낸 작품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는 스핑크스와 정복자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만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거만해 보인다는 이유로 대포를 쏘아 떨어뜨린 수염은 보이지 않는다. 말을 탄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정복하러 왔노라'고 선전포고를 하듯 스핑크스를 똑바로 쳐다본다.

  •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
    ▲ 최혜원 블루로터스 아트디렉터
    스핑크스와 연관된 일화 중에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오이디푸스' 일화가 있다. 방랑하던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 테베 주민들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그림 속에서 제롬은 나폴레옹을 마치 괴물 스핑크스에서 해방시킨 이집트의 오이디푸스로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정복당하는 입장의 이집트 사람들에게 그는 정복자이고 약탈자, 또 한 사람의 폭력을 행사하는 압제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