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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매주 연재한 과학 칼럼을 묶은 책. 이렇게 말하면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은 그저 그런 과학 칼럼집 정도일 듯 싶다. 하지만 책장을 펼쳐 보면 이내 책갈피 속으로 얼굴을 파묻게 하는 흥미 있고 유익한 과학교양서다.
저자는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답게 적절한 주제를 찾아 간명한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경쾌하게 문제를 부각하고 깔끔하게 핵심을 제시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부담 없이 생각을 유도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모두 100꼭지의 글들은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깨고자 마련한 저자의 뷔페 음식인 셈이다. -
크게 3부로 이뤄져 있는데, '상식과는 다른 과학을 포착하다'(1부), '현실 속의 과학을 포착하다'(2부), '교양으로서의 과학을 성찰하다'(3부) 등으로 과학과 과학사의 오랜 논란거리들이거나 시의적인 현실 이슈들을 짚어간다.
뷔페 음식 모두에 순서대로 손길을 뻗칠 필요가 없듯이 이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어갈 까닭은 없다. 아무 꼭지나 틈나는 대로 읽으면서 그 꼭지가 궁극적으로 어느 범주, 즉 3부 가운데 어디에 들어 있는지 추리하는 식으로 읽으면 좋겠다. 식사 전후의 자투리 시간이나 일하는 틈틈이 휴식처럼 편하게 책을 펼치면 된다.
좀더 알차게 읽고 싶다면 책 앞에 붙어 있는 차례를 찬찬히 살피며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지 추리해 보자. 당장 눈에 보이는 차례들만 보아도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다. '오류의 편안함' '인간이 발견을 만들까, 발견이 인간을 만들까?' '신체 반응과 감정의 선후 관계' '과학의 진리는 뒤를 뒤쫓는다' '근대 과학의 탄생'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잘 다가오지 않는다면 살짝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보자. 이 칼럼들이 연재된 독일 신문 디벨트지에서 여러분에게 차례에 실린 제목으로 칼럼을 다시 청탁했다고 하자. 무엇을 써야 할까? 조금 부담된다면 학교 신문이나 지역 신문에 기고한다고 생각해 보자. 글과 책을 읽을 때 자신의 소감과 생각을 부담 없이 각종 매체에 기고한다고 가정하면 좀더 심도 있게 접근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 특유의 문체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여유와 유머, 내공이 느껴지는 문체는 자칫 난해하고 까다로워질 수 있는 과학 칼럼을 편안하게 읽게 해준다. "늦었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저자의 오류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를 바란다(19쪽)"
"아인슈타인의 해(2005년)에 여러 철학자와 정치인이 물리학에 대한 발언을 했으므로, 모차르트의 해(2006년)에는 일개 과학사가가 작곡에 대해 발언해도 될 것이다(383쪽, 모차르트와 양자역학)"과 같은 문장을 읽으며 슬며시 웃음 짓게 된다.
대상에 대한 저자의 태도를 분석하며 읽는 것도 좋은 읽기 방법. 그는 카를 포퍼(Karl R. Popper)가 과학의 진보를 설명하면서 실험이 가설을 반증할 때에만, 즉 가설이 거짓으로 밝혀질 때에만 앎이 증가한다고 주장한 것을 비판한다.
"참 기묘한 탐구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논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적인 처지를 함축한다.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입증될 때 기쁨을 느껴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날 때 기쁨을 느껴야 마땅하다."(395쪽, 탐구의 논리와 연구자의 만족)
그렇다면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기적 유전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최근 '만들어진 신'을 펴낸 스타 과학자는 신의 부재를 주장한다. 즉 리처드 도킨스는 정확히 말해서 아직 신이 존재한다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서술 태도와 관점, 집필 의도 등에 자세히 알고 싶다면 저자 서문을 봐야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프롤로그가 그 역할을 한다. 여기서 저자는 과학을 비판적으로 대하며 열려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기성의 사고에 물들이지 않게 정반대로 사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선입견에 빠져서 오류를 범해서는 절대 곤란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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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문과 예술 분야까지 두루 꿰뚫는 식견의 소유자답게 언어와 문학, 창조적 사고 등에 대해서까지 관심이 뻗쳐 있다. 앞서와 같은 문장 뒤집기 시도 외에도 '소네트와 열역학 제2법칙' '틀린 단어들' '과학 용어의 일상적 의미' '문학과 삶' '그림과 단어' '모차르트와 양자역학' 등의 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여러 권을 읽는 방법도 써봄직하다. 주로 오른쪽에 배치된 '팁(tip)'을 꼼꼼히 읽고 자신만의 짤막한 '미니팁(mini tip)'을 만들어 포스트 잇 등으로 덧붙여 보자. 내친 김에 '찾아보기(index)'에 나온 이름과 용어, '참고 문헌'으로 소개한 글 역시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보완하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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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을 돕는 이 한권의 책] 과학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을 깨는 100꼭지 글
과학을 배반하는 과학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