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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자아 발견, 자아실현, 자아 정체성…. '자아(自我)'에 대해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아에 대해 '제대로' 말하기란 녹록지 않다. 자아 발견과 자아실현, 자아 정체성의 혼란, 자아와 자기 등 교과서에 나오는 말만 떠올려도 그러하다. 자아란 청소년기는 물론 전 생애에 걸쳐 찾아도 찾기 힘들고 통제하기도 어렵다. 인생의 목표를 자아실현에 둔다는 말이 새삼 멀게만 느껴진다.
이런 맥락에서 '자아 놀이 공원'은 제목부터 특별하다. "아니 자아를 가지고 어떻게 놀이 공원을 만든다는 거야? 자아가 무슨 갖고 노는 장난감 같은 건 줄 아나?"라는 책 속 등장인물의 투덜거림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 책은 저자가 밝힌 대로 '자아 발견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여러 지식을 이야기로 흥미롭게 구성한 소설'이다. 주인공은 16세 남자 고등학생. 따분하게 TV를 보다가 우연히 '자아 놀이 공원'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관한다는 뉴스를 본다. 미래 과학 기술을 체험하는 전시관이 있듯이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즐겁게 노는 체험 놀이 공원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주인공은 정말 자아실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면, 남보다 먼저 색다른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개관 기념 이벤트에 응모한다. 그리고 신기한 자아 탐구 시뮬레이션이 펼쳐지는 놀이 공원에 초대된다. 공원은 프로이트의 빙하놀이관과 스키너의 입체 게임관, 융의 UFO 전시관, 매슬로의 피라미드관, 에릭슨의 서바이벌 게임장 등 신기하고 즐거운 자아발견의 모험 공간으로 가득하다. -
"자아 놀이 공원은 프로이트, 융, 스키너, 에릭슨 등 저명한 심리학자들이 설계했습니다. 이들은 별다른 심리학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흥미로운 비유와 상징으로 각 체험관을 만들었습니다. 안과 밖이 만나 하나의 길이 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각 체험관마다 신기한 자아 발견의 모험이 새롭게 시작됩니다."(책머리, 자아 놀이 공원 안내도)
실제로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트리나 폴러스, 벌허스 스키너, 칼 융 등 세계적인 심리학자와 작가, 과학자, 예술가를 등장시킨다. 또 자아에 관해 탐구하고 표현했던 지성들의 말과 비유를 그대로 살렸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설명할 때 널리 쓰이는 빙하의 비유에서 '프로이트의 빙하 놀이관'을, 비행접시에 관해 쓴 융의 논문에서 '융의 미확인 비행 물체 전시관'을 고안해 제시하는 식이다. 책 뒷머리에 저자가 참고하고 활용한 자료들이 대목별로 알차게 소개돼 있다. 글쓰기란 늘 이렇게 읽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는 어렸을 때 학교공부는 뒷전이었지만, 교실 뒤에 놓여 있던 학급문고는 꼭 읽었다고 한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모두 독서의 영향이다. 작가로서 소설 형식을 취하고 전공자로서 심리학 공부 내용을 담아낸 성과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이 대입에 실패한 뒤에 겪은 개인사의 아픔을 털어놓는다. 애초에 원하던 대학을 못 갔다는 자책감이 우울함으로, 이내 길고 긴 방황으로, 마침내 자신을 방치하는 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단다.
그런데 토리 히긴스(Tori Higgins)의 '자기 차이 이론'을 접하면서, 즉 자신은 실제 무엇이라는 '실제적 자기',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무적 자기',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는 '이상적 자기'라는 세 종류의 자기 개념에서 자기를 바라보면서 비로소 자신을 바꿀 수 있었다고 돌이켜 본다.
좀더 일찍 심리학을 알았더라면, 좀더 강력하게 자기 정체성을 청소년기부터 가졌더라면, 자아 정체성이 무엇인지 따뜻하게 안내해주는 책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러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심리학을 공부하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과 의식, 자아를 성찰하고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
책을 쓰는 동안에 저자는 과거의 자신과 대화를 하며 좀더 깊고 넓게 주제를 파고들 수 있었고, 작품 속의 주인공인 '나' 역시 자아 놀이 공원을 즐겁게 모험하면서 자아를 성장해 나간다. 지
식성장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책을 읽어가는 과정은 심리학이란 무엇인지, 자아란 무엇이며 어떻게 탐색하며 자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자아 발견과 자아 형성의 개념이 모두 들어가 있는 놀이관'으로서 표현된 '자아 놀이 공원'은 바로 우리들의 삶과 현실, 세계를 뜻한다.
※좀더 알차게 읽는 방법: 저자는 '인지 학습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지 학습 방법이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특정 주제에 맞게 재구성하는 공부법. 소설 속 주인공이 어떻게 질문하고 지식을 모아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결론을 내리는지 곱씹으며 읽어 보자.
[논술을 돕는 이 한 권의 책] 성장에 도움되는 다양한 지식 흥미롭게 구성
자아 놀이 공원|이남석 지음|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