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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D (Harvard Graduate School of Design) 1층에는 50명 남짓 들어가는 방이 두 개가 있다. 보통 점심때에도 Landscape lunchbox로 작품발표 등으로 작은 강의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화요일은 엄청난 인파가 몰렸었다. 한 방에서는 라파엘 모네오가 수업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방에서는 베르나르 추미가 모센 모스타파비와 현대 건축의 현황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기 때문. 아마 두 거장이 벽 하나를 두고 작은 방에서 강의하는 상황은 GSD에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친구들과 농담을 했지만, 교과서에서나 보던 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지금은 건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GSD는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같은 전문대학원이다. 그래픽을 읽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공간을 체계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도면, 렌더링, 모델로 표현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진영 정도라 할까. 주로 수업은 스튜디오 공간을 디자인하는 수업에 많은 역점을 두는데, 한 지도교수당 10명의 학생이 한 스튜디오를 이루어 일주일에 두세번 만나서 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한다.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12시간 정도이지만, 그의 몇 배가 되는 시간을 수업준비에 쏟아야한다. 그 외에도 철학과 역사가 골치 아프게 섞여 있는 이론수업에선 도저히 100% 이해가 안 되는 미쉘 푸코를 읽고, 디자인보다는 공학과 더 흡사한 구조시간에는 오래전에 들은 물리를 떠올리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점심때나 저녁 시간에는 언제나 강의나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어 중요한 강좌를 쫓아다니기조차 어렵다. 과제를 다 끝내고 남은 시간에는 그래스 호퍼 등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온라인 튜토리얼을 보면서 공부한다. 때문에 보통 아침에 집을 나오면 새벽 2시가 다 돼서 돌아가는 것은 일상이다.
이렇게 건축이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성장통이 있었다. 영어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고, '건축의 언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쓸 줄 혹은 그릴 줄 알아야했다. 또 2000년 후반부터는 모든 건축학교가 잉크펜 대신에 마우스를 들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배우는데 게을리할 수 없었다. 밤새는 날이면 스튜디오 여기저기에서 "대체 건축이 뭐라고…"하면서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렇다고 건축가가 되면 부귀영화가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건축이 뭐기에 이 많은 사람이 이 애증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학부에서도 건축을 전공했지만, GSD에 와서야 비로소 나의 건축에 대한 열정의 이유를 찾게 된 것 같다. 물론 그림 그리고 예쁜 공간을 보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날 더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그보다 더 근본적이면서도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짜릿한 느낌이 있다. 건축을 통해 인류가 자아인식하는 방법을 관찰할 때면 "유레카!"를 아주 크게 외치고 싶을 때가 있고, 건축계 유명인사들이 내 눈앞에서 토론을 하는 모습을 보면 현대문화의 소용돌이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한 공간이 렌더링이나 모델을 통해 실현되는 순간에는 꿈이 현실화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처음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오래전에 GSD를 졸업하신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정말 원 없이 하고 오라고. 현대문화의 최전방에서 훌륭한 스승과 함께 미래의 현재를 만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싶다.
[해외대학은 지금] 하버드 이희승
GSD의 강행군 수업… 현대문화 최전방에 섰다는 자부심들어